상상해보세요. 평범한 오후, 아파트 단지 안을 걷다가 갑자기 무언가 발등을 ‘쿵’ 치고 지나갑니다. 돌아보니 작은 상자 모양의 기계가 태연하게 앞으로 굴러가고 있습니다. 배달로봇입니다. 발이 욱신거리고 눈물이 핑 돌지만, 주위를 둘러봐도 사과할 사람이 없습니다. 로봇은 이미 저만치 가버렸고, 핸들을 잡은 운전자도, 뒤에서 조종하는 오퍼레이터도 눈에 띄지 않습니다. 당신은 지금 누구에게 따져야 할까요?
이게 단순히 불편한 해프닝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법적인 질문을 하나 던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현행법상 이 사고로 처벌받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정답은 충격적입니다. 아무도 없을 수 있습니다. 배달로봇이 만들어낸 사각지대, 오늘 그 안으로 들어가봅니다.
아무도 없는 가해자의 자리 – 배달로봇, 어떻게 길 위에 등장했나
배달로봇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우리 일상 속으로 파고들었습니다. 음식 배달 플랫폼들이 앞다퉈 자율주행 로봇을 도입하면서, 이미 아파트 단지나 대학 캠퍼스, 대형 쇼핑몰에서 쏙쏙 굴러다니는 광경이 낯설지 않습니다. 바퀴 달린 작은 냉장고처럼 생긴 이 기계들은 GPS와 카메라, 각종 센서를 이용해 스스로 길을 찾아갑니다. 사람이 직접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알고리즘이 경로를 결정하고 장애물을 피하는 구조입니다.
편리함은 분명합니다. 인건비를 줄이고, 날씨나 시간에 상관없이 묵묵히 배달을 해냅니다. 하지만 편리함이 커질수록 불편한 질문도 같이 커집니다. 이 로봇이 노인을 넘어뜨리면? 아이를 치면? 비 오는 날 미끄러진 로봇이 오토바이와 충돌하면? 그 책임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요?
현재 국내에서 배달로봇이 관련된 크고 작은 접촉 사고들이 이미 보고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법적 처리 결과는 거의 알려지지 않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현행법이 이 상황을 명확히 규정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법의 언어로 로봇을 정의한다면 – 사람도, 차량도 아닌 존재의 딜레마
법은 세상을 카테고리로 나눕니다. ‘사람’과 ‘물건’, ‘차량’과 ‘보행자’ 같은 구분이 법적 책임의 기초가 됩니다. 그런데 배달로봇은 이 어디에도 깔끔하게 들어맞지 않습니다. 도로교통법상 ‘차량’으로 분류되지도 않고, ‘보행 보조 기구’로 보기도 애매하며, 완전히 자율적으로 움직인다는 점에서 단순한 ‘물건’이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현행 법 체계에서 사고 책임을 묻는 방법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형사적 처벌(과실치상, 업무상 과실 등), 둘째, 민사적 손해배상, 셋째, 제조물 책임법에 의한 제조사 책임입니다. 배달로봇 사고에 이를 적용해보면 각각 벽에 부딪힙니다. 형사 처벌은 ‘행위자’가 있어야 하는데 로봇은 법적 주체가 아닙니다. 민사 책임을 물으려면 누가 운영자인지, 과실이 있는지 입증해야 하는데 완전 자율주행 상황에서는 이 입증이 매우 까다롭습니다. 제조물 책임법은 제품에 결함이 있어야 하는데, “정상 작동하다가 사고가 났다”면 책임을 묻기 어렵습니다.
결국 피해자는 발이 부러진 채로 복잡한 법적 미로에 홀로 서게 됩니다. 사과받을 상대도, 보상받을 명확한 창구도 없이 말이죠. 놀랍게도 이 황당한 상황에는 역사적 선례가 있습니다.
의외의 연결고리 – 150년 전 영국 마차꾼들도 똑같은 혼란을 겪었다
1865년, 영국 의회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법을 하나 만들어냈습니다. 바로 ‘붉은 깃발법(Red Flag Act)’입니다. 자동차가 도로를 달릴 때는 반드시 앞에 사람이 걸어가면서 붉은 깃발을 흔들어야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최고 속도는 시속 6킬로미터로 제한됐습니다. 얼핏 보면 황당한 규정처럼 보이지만, 사실 당시 영국 의회의 입장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습니다. 자동차가 무엇인지 아무도 몰랐기 때문입니다. 말이 끄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직접 밀거나 당기는 것도 아닌 이 기계가 사람을 치면, 마차 사고처럼 처리해야 하는지 누구도 답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당시 마차 사고가 나면 마부에게 책임을 물었습니다. 하지만 자동차에는 마부가 없었습니다. 아니, 있어도 “기계가 스스로 움직였다”는 변명이 가능했죠. 법이 기술을 따라잡을 때까지 수십 년이 걸렸고, 그 사이에 사고를 당한 피해자들은 보상을 받기 위해 긴 싸움을 벌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 어디서 들어본 것 같지 않나요? 150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놀랍도록 같은 장면을 다시 보고 있습니다. 이번엔 자동차 대신 배달로봇이 그 자리에 있을 뿐입니다.
법이 새로운 기술 앞에서 멍하니 서 있는 이 현상에는 이름도 있습니다. ‘콜링리지 딜레마(Collingridge Dilemma)’입니다. 기술이 초기 단계일 때는 어떤 문제가 생길지 예측하기 어렵고, 기술이 충분히 퍼진 후에는 이미 수정하기가 너무 늦어진다는 역설입니다. 자동차가 그랬고, 인터넷이 그랬으며, 이제 배달로봇이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역사는 참 집요하게 반복됩니다.
피해자가 구제받을 방법은 있을까 – 민사와 형사의 경계에서
그렇다면 배달로봇에 치인 피해자는 정말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까요? 완전히 그렇지는 않습니다. 다만 길이 험하고 불분명합니다. 우선 민사 소송을 통해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운영사나 플랫폼 회사를 상대로 ‘관리 의무 위반’을 주장할 수 있죠. 로봇이 자율주행 중이었다 해도, 그것을 공공장소에 배치하고 운영한 회사에 관리 책임이 있다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형사적 처벌은 훨씬 어렵습니다. 형사 처벌은 ‘고의’ 또는 ‘과실’이 있는 ‘사람’을 처벌합니다. 로봇이 스스로 판단해 이동하다 사고를 낸 상황에서, 알고리즘을 설계한 개발자를 과실로 처벌할 수 있을까요? 개발자는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사고가 나지 않도록 설계했다”고 항변할 수 있고, 운영자도 “직접 조종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구멍들 사이로 법적 책임이 스르르 빠져나갑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지금의 법체계가 ‘자율적으로 판단하는 존재’를 전혀 상정하지 않고 만들어졌다는 점입니다. 법은 항상 “사람이 판단한다”는 전제 위에 서 있습니다. 로봇이 스스로 판단한다면, 그 판단의 결과에 대한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는 것일까요? 아직 아무도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계는 이 문제를 어떻게 풀고 있나 – 로봇 책임법의 서막
다행히 세계 각국이 이 문제를 모른 척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유럽연합(EU)은 AI 책임 지침을 정비하면서, 고위험 AI 시스템이 피해를 야기했을 경우 운영자가 책임을 지는 방향으로 법을 재설계하고 있습니다. 특히 자율주행 차량이나 서비스 로봇에 대해 “결함이 없다는 것을 운영자가 직접 입증해야 한다”는 입증 책임 전환 원칙을 도입하려 합니다. 피해자가 결함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 측이 결함 없음을 증명해야 한다는 획기적인 방향 전환입니다.
미국에서는 일부 주(州)가 개별적으로 배달로봇 관련 법규를 만들고 있습니다. 버지니아주, 오하이오주 등은 이미 ‘개인 배송 기기(Personal Delivery Device)’ 규정을 마련해, 보도 위에서의 주행 조건과 사고 발생 시 운영사의 보험 가입 의무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법이 기술 뒤에서 허겁지겁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미리 길을 닦아두겠다는 시도입니다.
한국에서도 자율주행 로봇의 도로·보도 주행을 일부 허용하는 제도가 생기면서, 관련 보험 의무화나 운영 기준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멉니다. 배달로봇이 사고를 냈을 때 피해자가 즉각적으로 연락할 수 있는 창구, 의무 보험 가입, 사고 영상 보존 의무 등 실질적인 안전망은 여전히 미비한 상태입니다.
기술이 먼저 달리고 법이 뒤따르는 풍경 – 우리는 무엇을 요구해야 하나
배달로봇은 분명 미래입니다. 편리하고, 효율적이고, 날로 정교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미래가 공정하게 작동하려면, 기술만큼 법도 빠르게 진화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기술이 앞서 달리고 법이 허겁지겁 뒤따르는 상황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언제나 일반 시민입니다. 아무 잘못도 없이 발이 밟힌 그 사람처럼 말이죠.
우리가 요구해야 할 것은 간단합니다. 배달로봇을 도입하는 회사는 의무적으로 보험에 가입해야 하고, 사고 발생 시 즉각 신고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하며, 피해자 구제 절차가 명확해야 합니다. 기술 혁신과 사람의 안전이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은, 150년 전 자동차가 처음 도로에 나왔을 때 우리가 이미 배웠어야 할 교훈이었습니다. 역사가 이미 한 번 가르쳐준 교훈을 이번엔 조금 더 빠르게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