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초반 청소년이 저지른 강력 범죄 소식이 뉴스를 타고 번질 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촉법소년’인데요. “형사처벌을 못 받는다니 말이 되느냐”는 분노와 함께 연령 기준을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집니다. 그런데 잠깐, 실제로 연령 기준을 낮춘 나라들에서 청소년 범죄는 줄어들었을까요? 이 질문이야말로 논쟁의 핵심인데, 의외로 이 부분은 잘 다뤄지지 않습니다. 오늘은 해외 사례와 통계를 통해 이 이슈의 본질을 찬찬히 짚어보겠습니다.
촉법소년, 왜 지금 이렇게 뜨거운가
현행 한국 소년법상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의 청소년은 범죄를 저질러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습니다. 이들이 바로 ‘촉법소년’인데요. 형사책임 능력이 없다고 보아 경찰에 넘기는 대신 가정법원의 보호처분을 적용하는 방식입니다. 소년원 송치나 보호관찰 같은 조치가 가능하지만, 전과 기록은 남지 않습니다.
문제는 최근 들어 10대 초반이 가담한 집단 폭행, 절도, 심지어 살인까지 이어지는 사건들이 잇따르면서 “어린 나이를 방패삼아 범행을 저지른다”는 인식이 확산됐다는 점입니다.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사건이 빠르게 퍼지고, 피해자 가족의 절절한 호소가 더해지면서 촉법소년 제도 자체를 폐지하거나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는 상황이죠.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맥락이 있습니다. 대중이 체감하는 청소년 범죄의 심각성과 실제 통계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뉴질랜드 사례가 대표적인데요, 2024년 조사에서 뉴질랜드 국민의 무려 87%가 “최근 5년간 청소년 범죄가 늘었다”고 답했지만, 공식 통계는 오히려 감소 추세를 보였습니다. 한국도 다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언론이 자극적인 사건을 집중 조명할수록 체감 치안과 실제 치안 사이의 거리는 벌어지게 마련이니까요.
연령 기준을 낮춘 나라들, 어떤 선택을 했나
영국: 세계 최저 수준의 형사책임 연령
영국(잉글랜드·웨일스)은 형사책임 연령이 만 10세로, 선진국 중에서도 가장 낮은 축에 속합니다. 10살짜리 아이도 형사법정에 세울 수 있다는 뜻인데요. 이 기준은 1998년 청소년범죄법을 통해 더욱 강화됐습니다. 당시 영국 사회는 10살짜리 두 소년이 2살배기를 잔혹하게 살해한 이른바 ‘제임스 벌저 사건’ 이후 충격과 분노에 휩싸여 있었고, 정치권은 ‘강경 대응’을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요? 영국의 청소년 구금 인원은 오히려 증가했고, 재범률도 좀처럼 낮아지지 않았습니다. 아동 인권 단체들은 10세 기준이 아동의 발달 단계와 맞지 않는다고 꾸준히 비판해왔고, 유엔 아동권리위원회 역시 영국에 연령 상향을 권고했습니다. 유럽 대부분의 나라가 형사책임 연령을 14~16세로 설정한 것과 비교하면 영국의 선택은 사실상 국제적 흐름과 역행하는 방향이었습니다.
미국: 주마다 다른 실험, 그리고 뒤집힌 결론
미국은 연방제 특성상 형사책임 연령이 주마다 천차만별입니다. 일부 주는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10대를 성인 법정에 세우는 이른바 ‘성인 기소 제도(Adult Prosecution)’를 적극 활용해왔는데요. 1990년대 청소년 폭력 범죄가 급증하자 “청소년도 성인처럼 책임져야 한다”는 분위기 속에서 여러 주가 앞다퉈 기준을 낮췄습니다.
그런데 수십 년이 지나 쌓인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결과가 예상과 달랐습니다. 성인 교도소에서 시간을 보낸 청소년의 재범률이 소년원을 거친 청소년보다 오히려 높게 나타난 것이죠. 범죄심리학자들은 성인 교도소 환경이 어린 범죄자를 교화하기보다 ‘범죄 학교’ 역할을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에 따라 2000년대 중반 이후 여러 주가 다시 기준을 완화하거나 청소년 전담 처우 시스템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는데요, 이 흐름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독일과 북유럽: 다른 방향의 선택
독일은 형사책임 연령을 14세로 유지하면서 14~17세 청소년에게는 별도의 청소년법원법을 적용합니다. 처벌보다 교육과 재사회화에 초점을 맞추는 방식인데요. 스칸디나비아 국가들도 비슷한 철학을 공유합니다. 덴마크·핀란드·스웨덴은 15세 미만 청소년을 아예 형사 시스템 밖에서 복지 시스템으로 다루고, 사회복지사와 아동보호 전문가들이 개입합니다. 강경 대응 대신 예방과 지원에 투자한 이 나라들의 청소년 재범률은 영미권 국가들과 비교해 눈에 띄게 낮습니다.
핵심 질문: 연령을 낮추면 범죄가 줄어드는가
통계가 보여주는 불편한 현실
직관적으로는 “더 엄하게 처벌하면 무서워서라도 범죄를 안 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런데 범죄학 연구들은 이 기대를 대체로 지지하지 않습니다. 처벌의 ‘억제 효과’가 작동하려면 범죄 당사자가 처벌 가능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할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10대 초반 청소년에게 그것을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충동적이거나 집단 압력을 받는 상황에서 저질러지는 청소년 범죄의 경우, 처벌 수위보다 처벌 가능성의 확실성이 억제력에 더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즉, 형사책임 연령을 낮추는 것보다 범행 후 신속하고 일관된 개입이 이루어지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얘기입니다. 뉴질랜드에서 2022년 차량 돌진 절도가 급증했을 때도, 전문가들은 처벌 강화보다 반복 범행 청소년에 대한 집중 개입 프로그램이 실질적인 해결책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범죄의 진짜 원인을 외면한 결과
여기서 가장 중요한 데이터를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요. 뉴질랜드 법무부 연구에 따르면 만 10~13세에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아동의 무려 97%가 이전에 아동복지 기관의 개입이 필요했던 사례, 즉 학대나 방치 피해 기록이 있었습니다. 14~16세 청소년 범죄자 중 87%는 보호처분 등 이전 복지 개입 경험이 있었고요. 이 숫자가 의미하는 바는 명확합니다.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 대부분은 이미 시스템이 실패한 피해자라는 것입니다.
범죄학자들이 일관되게 지목하는 청소년 범죄의 핵심 원인은 빈곤, 가정폭력, 아동 학대, 방치, 낮은 교육 성취도, 약물 문제입니다. 이 구조적 요인들을 그대로 둔 채 형사처벌 연령만 낮춘다면, 마치 집에 물이 새는데 바닥의 물만 닦는 것과 같습니다. 근본 원인은 손대지 않은 채 표면적 대응만 강화하는 셈이죠.
한국의 논쟁, 어디쯤 와 있나
한국에서도 촉법소년 기준 연령을 현행 14세 미만에서 13세 혹은 12세 미만으로 낮추자는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여러 차례 국회에서 관련 개정안이 발의됐고, 여론조사에서도 연령 하향을 지지하는 비율이 높게 나타납니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정치권이 이 카드를 꺼내드는 건 이미 익숙한 패턴이 됐는데요.
문제는 이러한 논의가 선거 국면이나 충격적인 사건 직후에 주로 집중된다는 점입니다. 해외의 사례에서도 보았듯이, 범죄에 강경하게 보이려는 경쟁이 과학적 근거보다 앞서면 효과 없는 정책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뉴질랜드 연구자들이 이를 ‘형벌 포퓰리즘’이라 부른 것처럼, 강경 대응은 유권자에게 어필하기 좋지만 실제 범죄율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피해자와 유가족의 고통을 무시하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현행 보호처분의 실효성을 높이고, 처분 이후 사후 관리를 강화하며, 재범을 줄이기 위한 실질적인 개입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것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연령 하향이 논의된다면, 그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훨씬 더 촘촘한 정책 패키지가 함께 설계돼야 합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효과가 있었던 방법은
국제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효과적이라고 꼽는 접근법은 처벌 강화가 아닌 조기 개입입니다. 위기 가정의 아이들을 일찍 발견해 지원하는 체계, 학교 밖 청소년을 연결하는 시스템, 피해 청소년에 대한 심리치료와 상담 지원 등이 대표적인데요. 이미 범죄에 발을 들인 청소년에 대해서는 단순 구금보다 집중 보호관찰과 멘토링이 재범률을 유의미하게 낮추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핀란드나 노르웨이처럼 아동복지 시스템에 과감히 투자한 나라들의 청소년 범죄율이 영미권에 비해 낮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닙니다. 단기적으로는 처벌 강화가 여론의 지지를 받기 쉽지만, 장기적으로 사회 안전을 높이는 데 더 큰 효과를 내는 건 예방과 재활에 투자하는 방식입니다. 비용도 결국 덜 들고요.
결국 촉법소년 논쟁은 “몇 살부터 처벌할 것이냐”보다 “왜 그 아이는 범죄를 저질렀는가”를 먼저 묻는 데서 시작해야 합니다. 처벌의 나이를 낮추는 것보다 개입의 시기를 앞당기는 것, 그것이 데이터가 가리키는 방향입니다.
마치며: 분노를 넘어 실효성을 물어야 할 때
촉법소년 이슈가 터질 때마다 우리 사회는 뜨거운 분노와 함께 빠른 해법을 원합니다.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피해자의 고통과 억울함은 분명히 공감받아야 하니까요. 하지만 감정이 정책을 이끌 때, 우리는 종종 효과 없는 대책에 사회적 자원을 쏟아붓는 실수를 반복하게 됩니다.
연령 기준을 낮춘 나라들의 경험은 하나의 공통된 교훈을 전해줍니다. 강경한 처벌이 범죄를 줄인다는 증거는 놀랍도록 빈약하고, 범죄의 뿌리를 겨냥한 투자가 훨씬 더 오래가는 효과를 낸다는 것입니다. 촉법소년 논의는 계속돼야 합니다. 다만 그 논의의 중심에 “이렇게 하면 실제로 효과가 있는가”라는 질문이 반드시 놓여야 한다는 점,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