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 단체라고 하면 보통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폭탄, 총기, 지하 조직… 이런 단어들이 먼저 떠오를 겁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어떨까요 — 한 무장 단체가 수백만 명의 시민을 위해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운영하고, 심지어 노인에게 연금을 지급했다는 사실. 믿기 어렵죠? 하지만 이게 바로 하마스가 가자지구에서 실제로 해온 일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미처 몰랐던 하마스의 ‘또 다른 얼굴’, 즉 하나의 ‘국가’처럼 기능했던 거버넌스 시스템과 그 붕괴의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하마스, 알고 보면 ‘선출된 정부’였다
2006년, 팔레스타인 역사상 가장 공정하다는 평가를 받은 총선이 치러졌습니다. 국제 선거 감시단도 참여한 이 선거에서 놀라운 결과가 나왔어요 — 하마스가 전체 의석의 과반을 훌쩍 넘겨 압도적 승리를 거뒀습니다. 단순한 무장 세력이 아니라, 표를 받아 집권한 ‘선출 권력’이 된 거예요. 이후 내부 권력 다툼 끝에 2007년부터 하마스는 가자지구를 사실상 단독으로 통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게 왜 중요하냐고요? 왜냐하면 하마스는 집권 이후 단순히 총을 들고 거리를 장악한 게 아니라, 세금을 걷고, 공무원을 고용하고, 법원을 운영하고, 전기와 수도를 관리하는 ‘국가 행정 시스템’ 전체를 직접 구축했기 때문입니다. 인구 200만 명이 넘는 도시를 운영한다는 건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에요. 서울 인구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사람들의 삶을 책임지는 시스템이 하마스라는 이름 아래 돌아가고 있었던 셈이죠.
물론 국제사회 대부분은 하마스를 테러 단체로 규정하고 있고, 이스라엘·미국·EU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테러 단체’가 가자지구 시민들에게는 유일한 행정 주체이자 생계의 원천이었다는 사실 — 이것이 가자지구 문제를 단순히 ‘선악 구도’로만 볼 수 없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학교부터 연금까지 — 가자지구의 숨겨진 복지 시스템
하마스가 운영한 사회 인프라의 규모는 생각보다 훨씬 광범위했다고 해요. 우선 교육 분야만 해도, 하마스는 수십 개의 학교를 직접 운영했습니다. 이슬람 재단 계열 학교들을 포함하면 수십만 명의 아이들이 하마스와 연계된 교육 기관에 다닌 셈이에요. 교과서 내용이나 교육 이념에 대한 비판은 별개로 하더라도, ‘등록금 없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은 극빈층 가정에게 결코 가볍지 않은 혜택이었습니다.
의료 시스템도 마찬가지예요. 가자지구의 공공 병원과 진료소들은 하마스 행정부 아래에서 운영됐고, 하마스 연계 자선 단체들은 민간 의료 서비스를 무료 또는 저가로 제공했습니다. 심지어 고아원, 노인 요양 시설, 장애인 지원 센터까지 운영했다고 해요. 이게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실감이 안 되신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 복지 사각지대에서 아무도 챙겨주지 않던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손을 내밀어 준 존재가 하마스였다는 겁니다.
거기서 그치지 않아요. 하마스는 공무원과 경찰, 사법부 직원들에게 급여를 지급했고, 은퇴한 팔레스타인 공무원들에게는 연금까지 제공했습니다. 2만 명이 넘는 직원이 하마스 행정부 소속이었다는 추산도 있어요. 이 사람들과 그 가족들의 생계가 하마스라는 구조 위에 얹혀 있었던 거죠. “하마스를 무너뜨리면 끝”이라는 단순한 공식이 왜 현실에서 작동하기 어려운지, 이 숫자 하나로 느껴지지 않나요?
무장 조직이 어떻게 복지 국가가 됐나? — 뿌리를 찾아서
하마스의 뿌리는 사실 군사 조직이 아니라 ‘사회운동’에 있습니다. 1987년 공식 창설 이전부터 하마스의 모태인 무슬림 형제단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이슬람 사회 서비스 네트워크를 조용히 구축해 왔어요. 학교, 클리닉, 스포츠 클럽, 청년 단체까지 — 이 모든 것들이 무슬림 형제단 계열 조직들에 의해 운영되다가 하마스의 집권 이후 행정 시스템으로 흡수·확장된 겁니다. 복지 활동이 먼저였고, 무장 투쟁은 나중에 덧붙여진 셈이에요.
이런 배경이 하마스가 2006년 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핵심 이유이기도 합니다. 당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파타당 중심)는 부패와 무능으로 민심을 잃은 상태였어요. 반면 하마스 연계 단체들은 수십 년간 가난한 팔레스타인 가정에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해 왔죠. “저 사람들은 말만 하지만, 하마스는 우리 아이 밥을 먹여줬다”는 인식이 표로 이어진 겁니다. 정치적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선택이었던 거예요.
물론 이 시스템 전체가 ‘순수한 복지’였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복지 서비스는 지지 기반을 다지고, 이념을 전파하고, 조직원을 충원하는 수단으로도 기능했으니까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혜택을 실제로 받은 수백만 명의 삶이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시스템이 아무리 불순한 동기에서 시작됐다 해도, 그 안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현실은 지극히 구체적이고 절박했습니다.
2023년 이후, 모든 것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2023년 10월,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과 이어진 이스라엘의 대규모 군사 작전은 가자지구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단순히 건물이 무너진 게 아니에요. 수십 년에 걸쳐 구축된 행정·복지 시스템 전체가 한꺼번에 기능을 잃어버렸습니다. 병원은 의약품과 전기가 끊겼고, 학교는 폭격으로 사라졌으며, 공무원들은 사망하거나 피난길에 올랐어요. 마치 한 나라의 정부가 통째로 지워진 것과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겁니다.
여기서 비극적인 아이러니가 발생합니다. 하마스의 행정 시스템이 붕괴되면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건 하마스 조직원이 아니라, 그 시스템에 의존해 살아온 평범한 시민들이었습니다. 연금이 끊긴 노인들, 학교가 사라진 아이들, 진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들 — 이들에게 하마스의 붕괴는 ‘해방’이 아니라 ‘생존 기반의 소멸’을 뜻했어요. 가자지구의 실업률이 전쟁 이전에도 이미 50%를 넘나들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공백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 점에서 “하마스 해체 이후”를 가장 어려운 문제로 꼽습니다. 단순히 무장 세력을 제거하는 것과, 200만 명의 시민이 의존하던 행정 시스템을 대체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과제이기 때문이에요. 누가, 어떻게, 그 공백을 채울 것인가 —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내놓는 국가나 기관이 아직 없다는 사실이 현재 가자지구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이야기에서 배워야 할 것
하마스를 옹호하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테러 공격으로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된 사실, 그 책임이 분명히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아요. 그러나 동시에, 하마스가 단순한 ‘악의 집단’ 이상의 무언가였다는 사실도 외면하기 어렵습니다. 무너진 건물 잔해 아래에는 학교가 있었고, 병원이 있었고, 누군가의 일상이 있었습니다.
역사는 종종 우리에게 이런 불편한 진실을 들이밉니다. 단순한 선악 구도로는 설명되지 않는 복잡한 현실이 존재한다는 것. 하마스와 가자지구의 이야기는 그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복지 시스템을 통해 민심을 얻고, 선거로 집권하고, 20년 가까이 한 지역을 통치하다 전쟁으로 붕괴된 이 독특한 실체 — 이것을 어떤 언어로 규정하든, 그 안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만큼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세계 뉴스를 볼 때, 조금 더 깊은 질문을 던져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