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와 인스타그램, 이 둘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1994년 4월 14일, 미국 의회 청문회장에 7명의 남자가 나란히 서서 오른손을 들었습니다. 필립 모리스, R.J. 레이놀즈 등 당시 미국을 주름잡던 담배 회사 최고경영자들이었죠. 그들이 선서 아래 입을 모아 한 말은 단 하나였습니다. “니코틴은 중독성이 없습니다.” 수십 년간 수백만 명의 폐를 망가뜨린 산업의 수장들이, 카메라 앞에서 태연하게 그 말을 내뱉었습니다. 그리고 30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놀랍도록 비슷한 장면을 또 한 번 목격하고 있습니다. 무대는 실리콘밸리로 바뀌었고, 연기 대신 알고리즘이 등장했지만 — 대본은 섬뜩할 만큼 같습니다.
현재 메타(Meta)는 미국 40개 이상의 주 법무장관과 수천 명의 피해 청소년 가족들로부터 동시다발적인 소송을 받고 있습니다. 혐의의 핵심은 간단합니다. “당신들은 소셜미디어가 아이들의 정신건강을 파괴한다는 걸 알면서도, 더 오래, 더 자주 접속하도록 플랫폼을 설계했다”는 것입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 아닌가요? 맞습니다. 이건 빅토버코(Big Tobacco) 전쟁의 판박이입니다. 그리고 그 유사성은 단순한 우연이 아닙니다.
30년의 시차, 그러나 똑같은 대본
1990년대 담배 소송의 서막은 조용히 열렸습니다. 처음에는 개인이 담배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회사들은 “흡연은 개인의 선택”이라는 논리로 손쉽게 방어막을 쳤습니다. 하지만 사건이 커진 건 각 주 정부가 직접 칼을 빼 들면서부터였습니다. 담배로 인한 의료비를 세금으로 메워온 주 정부들이 “우리가 입은 피해를 배상하라”며 연합 전선을 펼친 겁니다. 결국 1998년, 담배 회사들은 46개 주와 역사적인 ‘마스터 합의(Master Settlement Agreement)’를 체결하며 2,06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 금액을 지불했습니다.
지금 메타를 둘러싼 풍경은 어떤가요? 처음엔 우울증을 앓는 십 대 소녀의 부모가 소송을 제기했고, 메타는 “소셜미디어와 정신건강의 인과관계가 증명되지 않았다”며 버텼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주 법무장관들이 하나 둘 연합하기 시작했습니다. 학교 정신건강 위기, 청소년 자해율 급증 — 이 사회적 비용을 감당해온 주 정부들이 빅토버코 때와 완전히 동일한 논리로 싸움에 뛰어든 겁니다. 심지어 소송에 참여한 주의 수도, 연합 구성 방식도 1990년대 담배 소송의 전개와 놀랍도록 일치합니다.
판도라의 상자를 연 내부 고발자들
담배 전쟁을 결정적으로 뒤집어 놓은 건 법정 논리가 아니라 한 사람의 용기였습니다. 브라운 앤드 윌리엄슨의 연구 부문 부사장이었던 제프리 위건드(Jeffrey Wigand)는 1996년 CBS 뉴스 ’60분(60 Minutes)’에 출연해 폭탄 발언을 쏟아냈습니다. 담배 회사들은 니코틴이 중독성이 없다고 대외적으로 주장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니코틴 흡수를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담배를 ‘설계’해왔다는 것이었죠. 회사의 비밀을 폭로한 그는 살해 위협과 소송에 시달려야 했지만, 그의 증언은 역사의 흐름을 바꿨습니다.
2021년, 메타 전 직원 프랜시스 하우겐(Frances Haugen)이 그 역할을 그대로 재연했습니다. 그녀는 수만 페이지에 달하는 내부 문서를 들고 나와 월스트리트저널과 미국 의회에 출석했습니다. 그 문서들 속에는 충격적인 진실이 담겨 있었습니다. 메타의 자체 연구팀이 “인스타그램이 십 대 소녀들의 신체 이미지와 자존감에 심각한 해를 끼친다”는 사실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는 것이었죠.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위건드의 폭로가 빅토버코의 ‘알면서도 숨겼다’를 입증했듯, 하우겐의 폭로는 메타의 ‘알면서도 계속했다’를 만천하에 드러냈습니다.
“우리는 몰랐다”는 말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이유
두 사건 모두에서 기업 측의 첫 번째 방어선은 ‘무지(無知)의 주장’이었습니다. 담배 회사들은 “당시 과학적 근거가 불충분했다”고 했고, 메타는 “소셜미디어와 정신건강의 관계는 아직 연구 중”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내부 문서는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두 사건 모두, 기업이 대외적으로 내세운 무지와 달리 내부에서는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졌고, 그 결과가 불리하게 나오자 은폐하거나 축소했다는 정황이 드러났습니다. ‘몰랐다’는 방어 논리는 내부 고발자라는 변수 앞에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중독을 ‘설계’한다는 것의 의미
빅토버코의 가장 충격적인 내막 중 하나는 니코틴 농도를 의도적으로 조절했다는 사실입니다. 단순히 담배를 팔았던 게 아니라, 사람이 끊기 어렵도록 제품 자체를 공학적으로 설계했다는 것이죠. 이를 업계 용어로는 ‘니코틴 강화(nicotine enhancement)’라고 불렀는데, 쉽게 말하면 더 강하게 중독되도록 담배를 조작한 겁니다.
메타의 소셜미디어 알고리즘 설계 방식은 이와 구조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메타 내부에서는 사용자가 플랫폼에 머무는 시간을 늘리는 것을 가장 중요한 지표로 삼았습니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알고리즘은 분노, 불안, 비교 심리처럼 강한 감정 반응을 유발하는 콘텐츠를 우선적으로 노출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심리학적으로 인간이 끊기 어렵도록 피드를 무한 스크롤 방식으로 만들고, ‘좋아요’ 알림이 도파민을 자극하도록 타이밍을 조절했습니다. 담배 회사가 니코틴 농도를 조절했다면, 메타는 감정 자극의 강도를 조절한 셈입니다. 도구만 달랐을 뿐, 중독을 설계했다는 본질은 동일합니다.
아이들을 노린 전략: 조 카멜에서 인스타그램 키즈까지
1988년, R.J. 레이놀즈는 ‘조 카멜(Joe Camel)’이라는 만화 캐릭터를 담배 광고에 등장시켰습니다. 선글라스를 낀 멋진 낙타 캐릭터는 젊은 세대, 특히 아직 흡연을 시작하지 않은 미성년자들에게 담배를 친근하게 느끼도록 설계된 마케팅이었습니다. 실제로 조 카멜 캠페인 이후 십 대 흡연자 사이에서 카멜 담배의 점유율이 급격히 높아졌다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미래의 고객을 어릴 때부터 확보하겠다는 전략이었죠.
메타는 어떨까요? 프랜시스 하우겐이 폭로한 문서 중에는 메타가 ‘인스타그램 키즈(Instagram Kids)’, 즉 13세 미만 어린이를 위한 별도 버전을 개발하고 있었다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거센 비판이 일자 메타는 해당 프로젝트를 잠시 중단했지만, 더 어린 나이에 플랫폼에 유입시키려 했다는 의도 자체는 이미 드러난 뒤였습니다. 조 카멜이 만화 캐릭터로 아이들의 마음을 열었다면, 메타는 어린이 맞춤형 앱으로 미래 사용자를 선점하려 했습니다. 전략의 본질 — ‘어릴 때부터 잡아라’ — 은 완전히 같습니다.
주 법무장관들의 연합: 역사는 어떻게 반복되는가
1994년, 미시시피 주 법무장관 마이크 무어(Mike Moore)는 담배 회사들을 상대로 소를 제기하며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는 담배 회사들이 만든 병을 치료하는 데 수십억 달러를 썼다. 이제 그 청구서를 돌려보낼 시간이다.” 이 한 마디가 신호탄이 되어 주 하나, 둘, 열, 스물 — 결국 46개 주가 연합 전선을 구축했고, 역사상 가장 큰 기업 합의 중 하나가 이루어졌습니다.
2023년, 40개 이상의 미국 주 법무장관들이 메타를 상대로 공동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들이 내세운 논리를 들어보면, 마치 1990년대 담배 소송의 성명서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습니다. “메타는 청소년의 정신건강을 파괴하는 플랫폼을 운영하면서도 이를 숨겼고, 우리 사회는 그 피해를 감당해야 했다.” 주 정부들이 연합하는 구조, 공중보건 비용을 근거로 삼는 논리, 기업의 내부 문서를 증거로 활용하는 전략까지 — 담배 소송의 플레이북을 그대로 펼쳐 든 모양새입니다.
빅토버코의 최후가 남긴 교훈
1998년의 마스터 합의 이후, 담배 산업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2천억 달러가 넘는 합의금을 물었지만, 필립 모리스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큰 담배 기업 중 하나로 남아 있습니다. 대신 그들은 광고 규제, 청소년 접근 제한, 경고 문구 의무화 같은 새로운 규칙 아래 사업을 이어갔습니다. 산업이 소멸한 게 아니라, 산업이 운영되는 방식이 달라진 겁니다. 그리고 그 변화는 수천 개인의 소송이 아니라 주 정부들의 연합이 만들어냈습니다.
이 이야기의 결말은 어디로 흘러갈까
역사의 패턴이 이 정도로 선명하다면, 우리는 어느 정도 앞날을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메타가 당장 무너지지는 않을 겁니다. 마크 저커버그는 의회 청문회장에서 고개를 숙이는 퍼포먼스를 연출하겠지만, 회사는 협상 테이블에서 최대한 조건을 유리하게 만들려 할 것입니다. 합의금은 천문학적인 숫자가 될 수도 있지만, 메타의 규모를 생각하면 사업에 치명타가 되진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대신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 이후입니다. 담배 소송이 흡연율을 낮추고, 광고 규제를 만들고, 담뱃갑에 경고 문구를 새기는 계기가 됐듯이 — 메타 소송은 알고리즘 투명성 의무화, 미성년자 보호 규제, 중독 설계에 대한 새로운 법적 기준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담배와 소셜미디어. 얼핏 보면 아무 관계도 없어 보이는 두 가지가, 사실은 같은 이야기의 다른 챕터였습니다. 인류는 이미 한 번 이 싸움을 겪었고, 그 결말도 알고 있습니다. 이번엔 30년 전보다 더 현명하게 대응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또다시 모든 걸 깨닫고 나서야 움직이게 될까요? 역사가 주는 가장 무거운 교훈은, 우리가 그것을 알면서도 반복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