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상반기와 하반기, 대기업 공채 시즌이 되면 취업 준비생들의 눈빛이 달라지곤 했는데요. 그런데 요즘은 그 긴장감 자체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공채 공고가 아예 뜨지 않거나, 뜨더라도 모집 인원이 예전의 절반도 안 되는 경우가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AI가 일자리를 빼앗아 가서 그렇다”고 이야기하지만, 그것은 전체 그림의 일부일 뿐입니다. 실제로는 훨씬 더 구조적이고 조용한 변화가 한국의 노동시장을 뒤바꾸고 있는데요. 오늘은 그 민낯을 제대로 들여다보겠습니다.

신입 공채, 얼마나 줄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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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Zulfugar Karimov on Unsplash

불과 10년 전만 해도 삼성, 현대, LG, SK 같은 대기업들은 해마다 수백 명에서 수천 명 단위의 신입 사원을 정기 공채로 뽑았는데요. 공채는 단순한 채용 방식이 아니라 일종의 사회적 의례였습니다. ‘대졸 신입→대기업 입사→평생 직장’이라는 공식이 한국 사회의 커리어 문법으로 통용되던 시절이었습니다. 하지만 202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이 공식이 빠르게 무너지고 있습니다. 주요 대기업들은 정기 공채를 폐지하거나 규모를 대폭 줄이는 방식으로, 눈에 띄지 않게 채용 구조를 바꿔왔습니다.

특히 2025~2026년 들어 이 흐름이 더욱 뚜렷해졌는데요. 제조업 대기업들은 국내 생산 거점을 축소하거나 자동화 설비를 대거 도입하면서 현장 인력 수요 자체를 줄이고 있습니다. IT·플랫폼 기업들도 2022~2023년의 대규모 구조조정 이후 신규 인력 충원에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고요. 금융권은 오프라인 점포를 줄이면서 창구 업무를 담당할 신입 행원의 채용 규모를 지속적으로 감축해왔습니다. 숫자만 봐도 명확합니다. 산업 전반에 걸쳐 신입 채용은 줄어들고 있고, 그 빈자리를 무언가 다른 것이 채우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업들은 아예 사람을 안 뽑는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채용 공고 건수 자체는 유지되거나 늘어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단지 ‘신입’ 채용이 아닌 ‘경력직’ 채용으로 방향이 바뀌었을 뿐이고요. 바로 이 지점이 오늘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AI가 일자리를 뺏는다”는 말이 절반의 진실인 이유

대기업 신입 채용 감소를 이야기할 때 가장 자주 등장하는 설명이 바로 AI 자동화인데요. 틀린 말은 아닙니다. 챗봇이 콜센터 상담원을 대체하고, 생성형 AI가 초안 작성과 데이터 분석을 처리하며, 로봇 팔이 생산 라인을 운영하는 현실은 분명 존재합니다. 하지만 AI가 대체하는 것은 주로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업무입니다. 신입 사원이 처음 배우는 단순 보조 업무들이 이 범주에 들어가는 것은 사실이에요. 그래서 AI가 신입 채용 감소에 기여한다는 주장은 어느 정도 타당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AI가 일자리를 실질적으로 대체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최근 2~3년의 일인데, 신입 공채 감소는 왜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시작됐을까요? 삼성전자가 정기 공채를 폐지한 것은 2019년이었고, 현대자동차가 수시 채용 중심으로 전환한 것도 비슷한 시기입니다. AI가 지금처럼 강력한 업무 대체 능력을 갖추기 훨씬 전의 일이지요. 이것이 바로 “AI 때문이다”는 설명이 현상의 원인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AI는 기존에 이미 진행 중이던 구조적 전환을 가속화하는 ‘촉매’ 역할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마치 산불이 번지는 속도를 바람이 결정하듯, 불씨 자체는 훨씬 이전에 지펴져 있었던 셈이지요. 그 불씨의 정체가 바로 ‘상시 경력직 채용 구조’로의 전환입니다.

조용히 자리를 잡은 ‘상시 경력직’ 구조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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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입장에서 신입 사원 채용은 일종의 장기 투자와 같습니다. 교육비, 온보딩 비용, 낮은 초기 생산성,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쌓이는 연공 서열형 임금 상승까지 고려하면, 신입 한 명을 뽑아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인재로 키우는 데 드는 비용은 생각보다 훨씬 크지요. 반면 경력직은 어떨까요? 이미 해당 직무에서 검증된 능력을 갖추고 있고, 별도의 긴 교육 기간 없이도 즉시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불확실성이 높은 경제 환경에서 기업들이 경력직을 선호하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선택입니다.

더 중요한 변화는 채용의 ‘타이밍’이 달라졌다는 점인데요. 과거의 정기 공채는 봄·가을 시즌에 맞춰 대규모로 인력을 확보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상시 경력직 채용은 필요한 포지션이 생길 때마다, 즉각적으로 적합한 인재를 찾는 구조입니다. 마치 레스토랑이 특정 요리를 잘하는 주방장을 필요할 때 섭외하는 것처럼요. 이 방식은 기업에게 유연성을 주지만, 구직자 입장에서는 ‘언제 어디서 뜰지 모르는’ 채용 공고를 상시 모니터링해야 하는 부담을 안겨줍니다.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는데요. 상시 경력직 구조가 정착될수록, 사회 초년생이 처음 경력을 쌓을 수 있는 진입 통로 자체가 좁아집니다. 경력직이 되려면 경력이 필요하고, 경력을 쌓으려면 어딘가에서 신입으로 시작해야 하는데, 그 신입 자리가 줄어드는 역설이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이것이 구조적 문제가 되는 이유입니다.

왜 하필 지금 이 변화가 가속화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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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대 중반 이후 한국 경제를 둘러싼 환경은 기업들로 하여금 더욱 보수적인 인력 운용을 택하게 만들고 있는데요. 고금리와 내수 침체, 글로벌 공급망 재편, 수출 시장의 불확실성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기업의 미래 예측을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3~5년 단위의 장기 인력 계획을 세우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 큰 리스크입니다. 신입을 뽑아 키우는 것은 장기 투자지만, 불확실한 시장에서 장기 투자는 곧 리스크라는 인식이 강해진 것이지요.

아이러니하게도, MZ세대의 직장관 변화도 이 흐름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평생 직장보다 평생 직업”을 추구하는 젊은 세대의 이직 문화가 확산되면서, 기업들은 공들여 키운 신입이 2~3년 내에 이직할 가능성을 고려하기 시작했습니다. 교육 투자 대비 회수 기간이 짧아지니, 기업으로서는 이미 만들어진 인재를 데려오는 편이 합리적이라는 계산이 서는 것이고요. 개인의 자유로운 커리어 선택이 역설적으로 신입 채용 시장을 더 좁히는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는 셈입니다.

청년 세대가 마주한 새로운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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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 공채에 합격하는 것이 커리어의 ‘정답 경로’처럼 여겨졌는데요. 이 경로가 흔들리면서 많은 청년들이 출발선 자체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혼란스러워하고 있습니다.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에서 경력을 시작해 대기업으로 이직하는 ‘역(逆) 경로’가 점점 더 현실적인 선택지가 되어가고 있지요. 실제로 헤드헌팅 시장에서는 스타트업 경력 3년차가 대기업 경력직 채용에 지원하는 사례가 빠르게 늘고 있다고 합니다.

이 변화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닌데요. 다양한 경로를 통해 역량을 쌓고 대기업에 입성하는 사례가 늘면, 학벌 중심의 채용 문화가 일부 완화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문제는 그 전환 과정이 불투명하고, 어떤 경력이 어떤 대기업에서 통하는지에 대한 정보 비대칭이 크다는 것이지요. 준비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간의 격차가 공채 시절보다 오히려 더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결국 지금 청년 세대에게 필요한 것은 ‘공채 합격’이라는 단일 목표가 아니라, 다양한 경로에서 자신의 전문성을 증명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적 사고방식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커리어를 ‘선택’이 아닌 ‘설계’의 관점으로 바라봐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지요.

이 흐름, 되돌아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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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by Miguel A Amutio on Unsplash

단기적으로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상시 경력직 구조로의 전환은 이미 대기업들의 HR 시스템 깊숙이 자리를 잡았고, 경기 사이클이 회복된다고 해서 정기 공채가 부활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정부와 기업이 어떤 역할을 하느냐에 따라 충격을 완화할 여지는 있습니다. 청년 고용 촉진 인센티브, 직무 중심 교육 훈련 체계, 중소기업 경력을 대기업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직무 역량 인증 제도 등이 논의될 필요가 있는데요. 시장의 흐름을 거슬러 올릴 수는 없더라도, 그 흐름 속에서 낙오하는 사람을 최소화하는 것은 사회가 해야 할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대기업 신입 채용 감소는 단순한 경기 침체의 결과가 아니라, 기업의 인력 운용 철학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AI는 그 변화를 가속화하는 요소이지, 원인이 아니지요. 이 구분을 명확히 해야만 우리가 맞닥뜨린 문제의 해결책도 제대로 찾을 수 있습니다. 노동시장이 조용히, 그러나 근본적으로 재편되는 지금 이 순간, 개인도 사회도 그 변화의 본질을 정확히 읽는 눈이 필요한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