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월스트리트의 모든 사람이 부동산 불패 신화를 믿고 있을 때, 안대를 낀 한 남자가 홀로 반대 방향으로 베팅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비웃음을 샀습니다. 그의 고객들은 환불을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3년 뒤, 그 남자만 옳았습니다. 마이클 버리. 영화 <빅 쇼트>의 실제 주인공이자, 시장이 미쳐 있을 때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인물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가 또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번엔 AI입니다. 우연의 일치일까요, 아니면 역사는 정말 반복되고 있는 걸까요?

한 번은 천재, 두 번은 패턴

trading floor stock tic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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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버리를 단순한 ‘운 좋은 투자자’로 치부하는 건 쉽습니다. 하지만 그는 2008년 이전에 이미 수천 페이지의 주택담보대출 계약서를 직접 읽고, 부실 대출이 구조화 금융 상품 안에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수치로 증명했습니다.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세상을 이긴 사람입니다. 그랬던 그가 최근 몇 년간 AI 관련 주식, 특히 반도체 기업에 공매도 포지션을 잡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모두가 환호할 때, 그는 또다시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겁니다.

물론 그가 항상 옳은 건 아닙니다. 2008년 이후에도 그의 일부 베팅은 빗나갔습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건 그의 ‘촉’이 아니라, 그가 지목하는 구조적 패턴입니다. 서브프라임 붕괴 때와 지금의 AI 투자 열풍 사이에는 섬뜩할 정도로 닮은 구석이 다섯 군데나 있습니다. 하나씩 들여다보겠습니다.

닮은꼴 ① “이번만큼은 진짜 다르다”는 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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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부동산 시장의 가장 강력한 논리는 이것이었습니다. “미국 집값은 전국적으로 동시에 떨어진 적이 없다.” 실제로 역사적 데이터가 그렇게 보였으니까요. 새로운 금융 공학이 리스크를 분산시켰고, 규제 당국도 이 새로운 시스템을 신뢰했습니다. 비관론자는 ‘현실을 모르는 사람’으로 취급받았습니다.

지금 AI 시장에서도 똑같은 말이 들립니다. “AI는 인터넷 이후 가장 큰 혁명이다.” “이건 닷컴 버블과 다르다, 실제 기술이 있다.” 맞는 말입니다. 기술 자체는 실재합니다. 그런데 기술이 실재한다는 사실과, 현재의 밸류에이션이 합리적이라는 사실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2000년 닷컴 버블 때도 인터넷 기술 자체는 진짜였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나스닥 80% 폭락을 막아주지는 못했습니다.

역사상 거의 모든 버블의 정점에는 “이번은 다르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 말이 나오는 순간이 오히려 가장 조심해야 할 신호일 수 있습니다.

닮은꼴 ② 빚으로 쌓아 올린 성장 신화

서브프라임 사태의 핵심은 간단합니다. 돈을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에게 빚을 빌려줬고, 그 빚을 다시 복잡한 금융 상품으로 포장해 팔았습니다. 레버리지가 레버리지를 낳는 구조. 올라갈 때는 모두가 행복하지만, 한 고리가 끊어지는 순간 전체가 무너지는 방식이었습니다.

오늘날 AI 인프라 투자를 들여다보면 비슷한 냄새가 납니다. 빅테크 기업들은 AI 데이터센터와 GPU 클러스터에 수천억 달러를 쏟아붓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투자의 상당 부분이 아직 명확한 수익 모델이 없는 상태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주가 상승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그 자금으로 또 투자하는 사이클. 시장이 계속 올라가는 동안은 괜찮아 보입니다. 하지만 이 구조가 어디서 본 것 같지 않으신가요?

샌프란시스코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팬데믹 이후 도심 상업용 부동산의 3분의 1이 텅 비는 ‘둠 루프’ 위기를 겪었던 이 도시가, 2023년 들어 인구 감소세를 반전시킬 수 있었던 핵심 요인 중 하나가 바로 AI 붐이었습니다. 한 도시의 운명을 AI 하나에 걸고 있는 형국입니다. 이 베팅이 틀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닮은꼴 ③ 수익은 미래에, 투자는 현재에

maze financial complex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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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2007년 주택 시장에는 ‘플리퍼(flipper)’라 불리는 사람들이 넘쳤습니다. 집을 사서 되파는 것으로 돈을 버는 투자자들이죠. 실제로 집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만으로 매수가 이루어졌습니다. 임대 수익 같은 실질 현금흐름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올라가는 가격 자체가 수익이었으니까요.

현재 AI 인프라 투자에서도 비슷한 논리가 작동하고 있습니다. 엔비디아의 GPU, 데이터센터, 클라우드 서비스에 천문학적 자금이 쏠리고 있지만, 이 투자가 실제로 어떤 규모의 수익을 만들어낼지에 대한 냉정한 계산은 뒷전입니다. “AI가 혁신을 일으키면 수익은 따라온다”는 논리는, “집값이 오르면 대출 상환 능력은 따라온다”는 2006년의 논리와 구조가 같습니다. 결과가 원인을 보장해줄 것이라는 믿음. 그리고 그 믿음이 가장 위험한 순간은 가장 많은 사람이 그것을 당연하게 여길 때입니다.

닮은꼴 ④ 복잡성이라는 이름의 연막

crowd rushing market frenz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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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O, CDO², CDS. 2008년 금융위기를 일으킨 상품들의 이름은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실제로 그 복잡성이 의도적이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상품이 복잡할수록 리스크를 감추기 쉽고, 투자자들은 “전문가들이 알아서 하겠지”라며 경계를 늦추게 됩니다. 마이클 버리는 그 복잡성을 뚫고 실제 내용물을 들여다봤기 때문에 진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의 AI 기술도 마찬가지입니다. 트랜스포머 아키텍처, 파라미터 스케일링 법칙, RLHF 같은 개념들은 일반 투자자는 물론, 많은 전문 투자자들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기술이 블랙박스일수록, 사람들은 숫자 대신 스토리를 삽니다. “GPT-5가 나오면 세상이 바뀔 것이다.” “AGI는 10년 안에 온다.” 이 서사 자체가 투자 판단의 근거가 됩니다. 실제로 그 기술이 어떤 수익을 얼마나 빠르게 만들어낼 수 있는지는 물어보기 어려운 분위기가 됩니다. 2007년의 금융 상품 설명회장처럼요.

닮은꼴 ⑤ 경고의 목소리를 지워버리는 시장의 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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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버리가 2005년에 서브프라임 위기를 경고했을 때, 그의 펀드 투자자들은 환불 소송을 걸었습니다. 골드만삭스는 그에게 팔았던 CDS 포지션을 되사려 했습니다. 언론은 그를 괴짜 취급했습니다. 시장이 올라가는 동안 경고의 목소리는 소음 취급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그 경고가 맞으면 손해를 보는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AI 회의론자들이 처한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AI 수익화가 아직 불분명하다”거나 “GPU 수요가 과대평가됐다”는 목소리를 내면, 곧바로 “기술 발전을 이해 못 하는 사람”이라는 딱지가 붙습니다. 시장이 계속 오르는 동안, 비관론자는 틀린 사람이 됩니다. 심지어 마이클 버리 본인도 몇 차례의 공매도 베팅이 빗나가면서 “역시 운이었다”는 평가를 듣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주목할 점은 경고가 틀린 것이 아니라, 단지 ‘타이밍’이 아직 오지 않은 것일 수 있다는 겁니다. 버블은 꺼지기 전에 항상 더 크게 부풀어 오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이 글은 AI가 사기라거나, 당장 AI 주식을 팔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마이클 버리의 방식이 항상 옳다는 말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2008년과 지금의 닮은꼴을 보면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진짜 질문은 “버블인가 아닌가”가 아니라, “나는 지금 스토리를 사고 있는가, 아니면 가치를 사고 있는가”입니다.

AI 기술이 세상을 바꿀 것이라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어떤 기업이, 어떤 방식으로, 얼마나 빠르게 그 변화를 수익으로 연결할 수 있는지는 완전히 다른 질문입니다. 마이클 버리가 2005년에 했던 일은 바로 그 두 번째 질문에 집중한 것이었습니다. 모두가 첫 번째 질문에 홀려 있을 때. 역사가 반복되는 이유는 기술이나 자산이 같아서가 아닙니다. 인간의 심리가 같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이 아닌, 분별력으로 이 시대를 읽는 것. 그것이 어쩌면 2026년을 사는 우리에게 마이클 버리가 건네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