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권한을 가진 민주주의 지도자는 누구일까요? 미국 대통령? 프랑스 대통령? 이 질문을 던지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시 고민하다 미국을 꼽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여러 정치학 연구에서 반복적으로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는 나라가 따로 있습니다.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이 불편한 진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한국에서 뜨겁게 논의되고 있는 ‘분권형 개헌’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지금부터 하나씩 풀어보겠습니다.

도쿄의 총리는 왜 그렇게 자주 바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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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치를 조금이라도 관심 있게 지켜본 사람이라면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을 겁니다. 일본의 총리는 유독 자주 교체됩니다. 1년을 채 못 채우고 물러나는 경우도 드물지 않고,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는 사람이 있어도 언제든 당내 불신임이나 의회의 신임 철회로 순식간에 퇴장할 수 있습니다. 전후 70여 년 동안 30명이 훌쩍 넘는 총리가 그 자리를 거쳐 갔으니, 평균 임기가 채 2년도 되지 않는 셈입니다.

그 이유는 제도에 있습니다. 일본은 의원내각제 국가입니다. 총리는 국민이 직접 뽑는 것이 아니라 국회에서 지명됩니다. 곧, 의회의 신임을 잃는 순간 자리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국민이 아니라 의회가 총리를 임명하고, 또 의회가 총리를 끌어내릴 수도 있는 구조입니다. 이 때문에 총리는 늘 의회와의 관계를 신경 쓰며 권한을 행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웃한 한국은 어떨까요? 한국 대통령은 5년 단임이라는 틀 안에서 사실상 어떤 정치 세력도 임기 중에 건드리기 어렵습니다. 탄핵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제외하면, 대통령은 5년 내내 그 자리를 지킵니다. 일본 총리와 한국 대통령, 같은 아시아의 민주주의 국가 지도자인데, 이 둘의 권한 구조는 완전히 다른 행성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한국 대통령, 세계에서 몇 번째로 강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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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 행정 수반의 공식 권한을 비교 분석한 정치학 연구들을 살펴보면, 한국 대통령은 꽤 이례적인 위치에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은 강력해 보이지만, 장관 한 명을 임명하려 해도 상원 인준이라는 촘촘한 견제를 통과해야 합니다. 대법관 임명도 마찬가지입니다. 프랑스는 대통령과 총리가 권한을 나누는 이원집정부제를 채택하고 있어서, 대통령 혼자 모든 결정을 내리지 않습니다.

반면 한국 대통령은 국무총리, 각부 장관, 검찰총장, 경찰청장, 국가정보원장 임명을 사실상 단독으로 주도합니다. 국회가 인사청문회를 열어 의견을 내지만, 법적 구속력이 없습니다. 청문회에서 아무리 날카로운 비판이 쏟아져도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하면 막을 수단이 없습니다. 행정권, 외교권, 군 통수권까지 거의 모든 핵심 권한이 단 한 명에게 집중되는 구조입니다.

놀랍게도, 이 사실을 정면으로 다루는 교육이나 공론장은 생각보다 드뭅니다. 우리는 대통령이 강력한 권한을 가진다는 것을 막연히 알면서도, 그것이 세계 민주주의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얼마나 이례적인 수준인지는 잘 인식하지 못합니다. 마치 물속에 사는 물고기가 물의 존재를 당연하게 여기듯이, 우리는 이 구조 자체를 너무 오랫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여왔습니다.

5년 단임제가 만들어낸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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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단임제는 처음 설계될 때 분명한 의도가 있었습니다. 군사 독재 시대의 장기 집권을 막고, 5년마다 국민이 새로운 지도자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였습니다. 1987년 민주화의 산물로 탄생한 이 조항은, 그 당시 맥락에서는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선택이었습니다. 독재로 회귀하는 것을 막아야 했으니까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이 제도는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기 시작했습니다.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대통령의 실질적인 영향력이 급격히 약해지는 ‘레임덕’ 현상이 거의 모든 정권에서 반복됩니다. 초반 1~2년은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다가, 임기가 절반 넘어가면 사실상 정치적 식물인간이 되는 패턴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재선이 없으니 단기적 성과에만 집착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전임 대통령이 공들여 시작한 정책을 뒤엎고 처음부터 다시 그리는 일이 정권마다 반복됩니다. 외교도, 경제 정책도, 사회 개혁도 5년마다 리셋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은 정반대의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총리가 너무 자주 바뀌다 보니 일관된 장기 전략을 세우기 어렵습니다. 자민당이라는 거대 정당이 수십 년 동안 정권을 유지하면서 어느 정도 연속성을 담보하긴 했지만, 그것은 ‘정권 교체가 없는 민주주의’라는 또 다른 비판을 낳았습니다. 한국과 일본은 서로 정반대의 딜레마를 각자의 방식으로 껴안고 있는 것입니다.

분권형 개헌, 이제 피할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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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권형 개헌이란 쉽게 말해, 대통령 한 사람에게 집중된 권한을 여러 기관과 지역으로 분산하자는 논의입니다. 프랑스식으로 대통령과 총리가 역할을 나누거나, 국회와 사법부의 실질적 견제 권한을 대폭 강화하거나, 지방 정부에 더 많은 자율권을 부여하는 방향 등 다양한 방식이 거론됩니다. 형태는 달라도 핵심 문제의식은 하나로 모입니다. “이렇게 많은 권한이 한 사람 손에 쥐어져 있는 것은 위험하다”는 인식입니다.

한국 사회는 이 논의를 사실 수십 년 전부터 해왔습니다. 민주화 이후 어떤 대통령 후보도 “집권하면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공약을 빠뜨린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막상 당선되고 나면 흐지부지되는 패턴이 반복됩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강력한 권한을 손에 쥔 사람이 그 권한을 스스로 내려놓는다는 것은, 본능에 반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분권형 개헌이 번번이 좌절된 것은 제도 설계의 어려움보다 권력을 가진 이의 의지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분명히 다릅니다.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탄핵하는 경험을 두 차례나 겪고 나서, “지금의 권력 구조 자체가 문제”라는 인식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넓게 퍼져 있습니다.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 개인의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시민 사회와 다양한 정치 세력이 공론화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변화를 위한 사회적 토양이 그 어느 때보다 무르익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권력을 나누는 것이 왜 더 강한 나라를 만드는가

한 가지 의문이 남습니다. 권력을 나누면 오히려 약해지는 것 아닐까요? 결정이 느려지고,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지지 않을까요? 표면적으로 그렇게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권한이 분산된 나라들이 장기적으로 더 안정적이고, 더 높은 국민 신뢰를 유지했다는 증거가 여러 사례에서 확인됩니다.

일본이 의원내각제를 채택한 것은 패전 후 연합국의 압력이 작용한 측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배경에는 강력한 권력이 단 한 명 혹은 소수에게 집중됐을 때 어떤 파국이 찾아오는지에 대한 뼈아픈 역사적 교훈이 있었습니다. 일본은 그 교훈을 헌법에 새겼고, 지금도 그 틀 안에서 운영되고 있습니다. 한국은 군사 독재라는 혹독한 경험을 겪었음에도, 권력 집중의 구조 자체는 크게 바꾸지 못한 채 지금까지 왔습니다.

권력의 분산은 나약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특정 인물의 판단 착오나 도덕적 실패에도 나라 전체가 흔들리지 않도록 만드는 구조적 강인함의 다른 이름입니다. 한국 대통령의 권한이 세계 최강 수준이라는 불편한 진실, 아무도 크게 말해주지 않지만 이것이 바로 분권형 개헌 논의의 출발점입니다. 이제는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가’를 묻는 것만큼,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과연 이렇게 많은 것을 혼자 결정해야 하는가’를 함께 물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