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지날 때마다 아무 의심 없이 통행료를 냅니다. 내 땅이 아니니까요. 그런데 만약 바다 한가운데에도 누군가의 ‘땅’이 있고, 그 위를 세계 석유의 5분의 1이 매일 지나간다면 어떨까요? 그 주인이 “통행료를 내라”거나 “오늘은 문을 닫겠다”고 선언한다면요? 황당한 가정처럼 들리지만, 이게 바로 호르무즈 해협에서 수십 년째 벌어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국제사회는 아직 이 문제의 정답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매일 내는 통행료와 국제 해협 — 어디서 이어지는 이야기일까?
톨게이트는 단순합니다. 도로 소유자가 길을 만들었고, 지나가는 사람은 그 대가를 냅니다. 주권과 재산권의 논리가 명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바다로 나오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수백 년 전부터 국제사회는 ‘공해(公海)는 누구의 것도 아니다’는 원칙을 지켜왔습니다. 배는 어디든 자유롭게 다닐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이 원칙을 ‘해양 자유의 원칙’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원칙에는 치명적인 허점이 하나 있습니다. ‘공해’가 아닌 ‘영해’에서는 얘기가 달라진다는 겁니다. 연안국으로부터 12해리(약 22km) 이내의 바다는 해당 나라의 주권이 미치는 영해입니다. 고속도로로 치면 개인 소유 도로인 셈이죠. 문제는 호르무즈 해협의 가장 좁은 구간이 고작 39km밖에 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양쪽 연안국인 이란과 오만이 각각 12해리씩 영해를 확장했을 때, 수학적으로 해협 전체가 두 나라의 영해 안으로 ‘흡수’되어버립니다. 톨게이트 앞에 선 셈이 되는 거죠.
공해가 ‘공짜’가 아닌 순간 — 1972년, 해협이 닫혔다
이것이 단순한 이론 게임이 아니라는 사실은 역사가 증명합니다. 1959년 이란이 영해를 12해리로 선언했고, 오만도 1972년에 같은 조치를 취했습니다. 그 순간부터 호르무즈 해협은 법적으로 완전히 두 나라의 영해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선박들이 페르시아만에서 대양으로 빠져나가는 유일한 출구가 사실상 이란과 오만의 ‘소유’가 된 것입니다. 당시 두 나라가 실제로 통행을 막지는 않았지만, 법적으로는 막을 수 있는 근거가 생긴 셈이었습니다.
비유하자면 이렇습니다. 수백 채의 집이 모인 마을의 유일한 출입로가 특정 주민의 마당을 가로지르는 상황입니다. 지금까지는 그 주민이 친절하게 통로를 열어뒀지만, 어느 날 기분이 나쁘거나 이해관계가 바뀌면 문을 걸어 잠글 수도 있습니다. 국제사회가 느끼는 호르무즈의 불안함은 바로 이 구조에서 비롯됩니다. 세계 경제의 심장부가 누군가의 마당 위에 놓여 있는 겁니다.
실제로 이란은 1993년 포괄적인 해양법을 제정하면서 군함, 잠수함, 핵추진 선박이 자국 영해를 통과하려면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못 박았습니다. 오만 역시 외국 군함의 영해 통과에 사전 승인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고수해왔습니다. 미국은 이 두 나라의 주장을 단 한 번도 인정한 적이 없습니다. 같은 바다를 놓고 세 나라가 서로 다른 법을 적용하고 있는 셈입니다.
법과 법 사이의 공백 — ‘무해통항’이냐, ‘통과통항’이냐
국제해양법에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두 가지 개념이 존재합니다. 첫 번째는 ‘무해통항(Innocent Passage)’입니다. 영해를 통과하되, 연안국의 평화나 안보를 해치지 않는 한 배가 지나갈 수 있다는 원칙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연안국이 ‘해롭다’고 판단하면 통항을 막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잠수함은 수면 위로 부상해야 하고, 군함은 허가를 받아야 할 수도 있습니다.
두 번째는 ‘통과통항(Transit Passage)’입니다. 공해와 공해를 잇는 국제 해협에 적용되는 개념으로, 연안국이 마음대로 막을 수 없는 훨씬 강력한 통행 자유를 보장합니다. 잠수함도 잠항 상태로 통과할 수 있고, 군용기도 상공을 비행할 수 있습니다. 이란과 오만은 호르무즈를 ‘무해통항’ 구역으로 보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통과통항’ 구역이라고 주장합니다. 어느 쪽이 맞느냐에 따라 해협을 통과하는 군함의 운명이 완전히 달라지는 거죠.
더욱 아이러니한 점은 이 논쟁의 심판 역할을 해야 할 유엔해양법협약(UNCLOS) 자체도 만능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 협약에 서명은 했지만 비준하지 않은 나라들, 혹은 비준하면서 자국에 유리한 선언을 추가한 나라들이 곳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규칙은 있는데 모두가 같은 규칙을 따르지 않는, 기묘한 법적 공백이 지금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위협은 반복됐고 — 결국 2026년, 현실이 됐다
법적 논쟁이 이어지는 동안, 현실에서는 훨씬 긴박한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이란은 국제 압박이 고조될 때마다 해협 폐쇄 카드를 꺼내 들었습니다. 2008년, 2011년, 2012년, 2018년, 2019년… 이란의 경고는 파도처럼 반복됐습니다. 유가는 경고 한 마디에 몇 퍼센트씩 요동쳤고, 세계 각국은 그때마다 항공모함과 구축함을 페르시아만으로 집결시켰습니다.
2025년 6월에는 이란 의회가 실제로 해협 폐쇄 결의안을 통과시키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미국의 이란 핵 시설 공습에 대한 보복 조치였습니다. 물론 최종 결정권은 최고국가안보위원회에 있었지만, ‘의회 결의’라는 전례 없는 수준의 공식화였습니다. 전문가들은 폐쇄가 현실화될 경우 유가가 배럴당 100~150달러를 훌쩍 넘어 전 세계 인플레이션을 뒤흔들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리고 2026년, 실제로 분쟁이 발화하면서 해협을 통한 원유 수송량이 무려 98% 급감하는 전대미문의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매일 1,800만 배럴이 오가던 ‘세계의 혈관’이 사실상 멈춰버린 것입니다.
한국으로서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수입하는 원유의 약 70%, 천연가스의 최대 30%가 이 해협에 걸려 있습니다. 호르무즈가 막히면 단순히 기름값이 오르는 수준을 넘어, 전력 공급과 산업 생산 전반이 흔들리는 충격을 피할 수 없습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좁은 해협 하나가 우리 일상을 쥐고 있는 셈입니다.
결론이 없는 게임 — 이 논쟁은 왜 끝나지 않는가
어쩌면 이 문제의 가장 섬뜩한 지점은 ‘아직도 답이 없다’는 사실 그 자체입니다. 국제사회는 수십 년간 전쟁 직전까지 갔다가 물러서고, 제재를 가하고, 협상을 시도했지만 호르무즈의 법적 지위를 명확히 정리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이란은 자국 영해임을 주장하고, 미국과 서방은 국제 통항로임을 주장합니다. 두 주장 모두 각자의 근거가 있고, 두 주장 모두 상대방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이 교착 상태가 지속되는 이유는 사실 간단합니다. 누군가 결론을 내리는 순간, 어느 한쪽이 치명적인 것을 잃기 때문입니다. 이란이 통과통항을 인정하면 자국 영해에 대한 통제권을 사실상 포기해야 하고, 미국이 무해통항을 인정하면 이란이 군함 통행을 막을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됩니다. 이해관계가 너무 클 때 법은 침묵하거나, 각자의 언어로 말하기 시작합니다. 호르무즈가 바로 그런 곳입니다.
톨게이트 앞에 선 세계 — 우리가 이 질문을 외면할 수 없는 이유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옵니다. “국제 공해에 통행료를 받을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호르무즈는 공해가 아닐 수도 있고, 설령 영해라 해도 연안국이 마음대로 막을 수 없을 수도 있으며, 그 경계선을 누가 그을지에 대한 합의조차 없습니다. 우리가 매일 거리낌 없이 내는 고속도로 통행료 뒤에는 분명한 소유권이 있습니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해협 앞에는 여전히 ‘주인’을 두고 싸우는 국가들이 있고, 그 논쟁의 여파는 주유소 기름값과 전기 요금이라는 형태로 우리 삶 속으로 스며듭니다.
의외의 연결고리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톨게이트와 페르시아만의 전함들은 전혀 다른 세계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결국 같은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이 길은 누구의 것인가?” 그리고 그 답을 누가, 어떤 기준으로 내리느냐에 따라 세계 경제의 흐름과 우리 일상의 물가가 달라집니다. 호르무즈의 통행료 논쟁은 법학 교과서 속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 중인 현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