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의점에 들어가 냉장고 옆 진열대에서 참치캔 하나를 집어 든 적 있으신가요? 별생각 없이 카트에 담으려다 가격표를 보고 “어, 이게 이렇게 비쌌나?” 하며 잠깐 멈칫했던 경험, 한 번쯤은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 참치캔 가격에는 단순한 수요와 공급 이상의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놀랍게도, 페르시아만 끄트머리 어딘가를 항해하는 한국 해군 초계함과 당신이 들고 있는 그 참치캔은 보이지 않는 실 하나로 단단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금부터 그 실을 하나씩 따라가 보겠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좁고 무거운’ 해협

ocean strait cargo ship
Photo by David Valverde on Unsplash

지도를 펼쳐 중동을 찾아보면, 페르시아만과 아라비아해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는 좁은 수로가 보입니다. 바로 호르무즈 해협입니다. 가장 좁은 지점의 폭이 불과 33킬로미터 남짓—서울에서 수원까지 거리보다 조금 긴 수준입니다. 그런데 이 손바닥만 한 바닷길을 통해 하루에 전 세계 원유 교역량의 약 20%가 오갑니다. 초대형 유조선이 하루에 수십 척씩 줄 지어 지나가는 그 좁은 길목 하나가 막히는 순간, 글로벌 에너지 시장은 즉각 패닉 상태에 빠집니다.

한국에게 이 해협은 더욱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한국이 쓰는 원유의 70% 이상이 중동에서 옵니다. 그리고 그 기름의 절대다수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해 한국으로 들어옵니다. 쉽게 말해, 이 바닷길은 한국 경제의 ‘산소 호스’와 같습니다. 이란과 미국이 으르렁대거나, 예멘 후티 반군이 유조선에 드론을 날리는 뉴스가 터질 때마다 한국 정부가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한국은 에너지 자급률이 5%도 채 안 되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경제학자들은 호르무즈 해협을 두고 “지구상에서 대체 불가능한 유일한 병목”이라고 부릅니다. 파나마 운하나 수에즈 운하는 우회로가 있지만, 이 해협 주변의 원유 생산국들은 파이프라인만으로는 전체 수출량을 감당하기 힘듭니다. 결국 세계 경제는, 그리고 한국 경제는 이 33킬로미터의 운명에 묶여 있습니다.

청해부대, 단순한 해적 소탕 이상의 임무

military navy warship patrol
Photo by Abdullah Al Hasan on Unsplash

2009년, 한국 해군은 최초로 아덴만 해역에 구축함을 파견했습니다. 공식 임무는 소말리아 해적으로부터 상선을 보호하는 것이었고, 이것이 청해부대의 시작이었습니다. 이후 한국군의 활동 반경은 조금씩 넓어져 호르무즈 해협 인근 해역으로까지 확대됐습니다. 언론에서는 흔히 “해적 퇴치 임무”라는 표현을 쓰지만, 국방·외교 전문가들은 이 파견의 본질을 ‘에너지 안보 수호’로 읽습니다.

실제로 2020년 초, 미국이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을 드론으로 제거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에 긴장이 고조됐을 때, 한국 정부는 청해부대의 작전 범위를 호르무즈 해협 인근으로 확대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미국은 한국에 다국적 해양안보 연합에 참여하라고 압박했고, 이란은 한국 선박을 나포하는 방식으로 불쾌감을 드러냈습니다. 한국은 이란산 원유를 사들이는 큰 손이었기 때문에 어느 한쪽 편을 섣불리 들 수도 없었습니다. 초계함 하나를 보내는 결정 뒤에 이토록 복잡한 방정식이 숨어 있었던 겁니다.

이 장면을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역설이 보입니다. 한국 군함이 호르무즈에 파견되는 배경 자체가, 이미 그 해협의 안정이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그리고 그 불안정이 시작되는 순간, 세계 원유 시장의 가격은 슬금슬금 고개를 듭니다. 군함의 항해와 유가 상승은 동시에 진행됩니다.

기름 한 방울이 참치캔이 되기까지

fishing vessel tuna catch
Photo by Jordan Allen Walters on Unsplash

자, 이제 진짜 이야기를 해볼 차례입니다. 참치캔 하나가 편의점 진열대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기름이 소비될까요? 먼저 원양어선을 떠올려 보세요. 한국의 원양 참다랑어 어선들은 주로 인도양과 태평양을 누빕니다. 수천 킬로미터를 항해해 조업 어장에 도달하고, 낚시와 선망으로 참치를 잡고, 다시 냉동 상태로 기지항까지 돌아오는 데—이 모든 과정이 중유 한 드럼, 또 한 드럼을 태우며 이루어집니다. 유가가 10% 오르면 어선 운영 비용도 두 자릿수 퍼센트로 껑충 뜁니다.

냉동 참치는 어장에서 냉동 운반선에 실려 한국이나 태국의 통조림 공장으로 이송됩니다. 이 냉동 운반선 역시 기름을 먹습니다. 공장에서는 참치를 삶고, 기름이나 물에 담가 캔에 밀봉하는데, 이 과정에도 전기와 열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완성된 캔은 트럭에 실려 물류센터로, 다시 편의점으로 이동합니다. 참치캔 하나의 여정을 따라가면, 사실상 모든 단계에 연료비가 녹아들어 있습니다. 참치캔은 참치와 기름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참치와 ‘기름값’으로 만들어집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있습니다. 비료값입니다. 통조림에 들어가는 식물성 기름(콩기름, 해바라기씨유)의 가격도 에너지 비용과 연동됩니다. 비료를 만드는 데 천연가스가 쓰이고, 천연가스 가격은 원유 가격과 함께 움직입니다. 결국 참치캔 안의 기름 한 숟가락에도 호르무즈의 그림자가 드리웁니다.

호르무즈가 흔들리면 편의점 진열대도 흔들린다

oil barrel fuel pr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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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사례를 보면 이 연결고리가 더 선명해집니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국제 유가가 배럴당 130달러를 넘어섰을 때, 국내 참치캔 가격은 한 해 사이 평균 10~20% 가까이 올랐습니다. 제조사들은 “원자재값 인상”을 이유로 들었지만, 그 원자재값 인상 뒤에는 에너지 비용 급등이 있었습니다. 유가 상승이 수산물 가공식품 가격에 반영되는 데는 보통 3~6개월의 시차가 생깁니다. 호르무즈에서 무슨 일이 터지면, 반년 후 편의점에서 그 청구서를 받게 되는 셈입니다.

더 무서운 시나리오도 있습니다. 이란이 실제로 호르무즈 해협 봉쇄를 단행하면 어떻게 될까요? 전문가들은 유가가 단기간에 배럴당 200달러를 넘길 수 있다고 추정합니다. 이렇게 되면 원양어선들은 수지가 맞지 않아 조업을 줄이거나 중단하게 됩니다. 공급이 줄어드는 동시에 운송·가공 비용은 치솟습니다. 참치캔 가격은 두 배, 세 배로도 뛸 수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편의점 참치캔 가격은 호르무즈 해협의 ‘지정학 온도계’입니다.

물론 반대로 생각하면, 한국 해군 초계함의 존재가 이 온도를 낮추는 역할을 합니다. 국제 해양안보 연합에 참여함으로써 호르무즈 해협의 통항 안전성을 유지하는 데 기여하고, 그 안정이 유가를 억제하며, 결과적으로 참치캔 가격도 방어합니다. 군사 파견을 단순히 ‘외교적 부담’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지도 위의 점 하나가 식탁을 바꾼다

convenience store grocery shelf
Photo by daniel mironov on Unsplash

우리는 보통 안보 문제와 장바구니 물가를 전혀 다른 세계의 이야기로 느낍니다. 뉴스에서 중동 긴장 고조 소식이 흘러나올 때, “나하고 무슨 상관이야”라고 채널을 돌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이 글을 여기까지 읽으셨다면, 그 두 세계가 사실 한 몸처럼 붙어 있다는 걸 이미 느끼셨을 겁니다. 에너지를 거의 전적으로 수입에 의존하는 한국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지구 반대편의 지정학이 고스란히 내 일상 물가로 번역되는 삶을 산다는 뜻입니다.

한국 해군 초계함이 호르무즈를 향해 출항하는 날, 그것은 단지 군인들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원양어선 선장의 연료비 계산서이고, 통조림 공장 사장의 원가 걱정이고, 편의점 점주의 발주 가격이고, 결국 당신과 저의 지갑 사정입니다. 편의점에서 다음번에 참치캔을 집어 들 때, 잠깐 이 보이지 않는 항로를 떠올려 보세요. 그 작은 캔 안에 세계 지도 한 장이 접혀 들어가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