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넘는 결혼 생활을 법원이 숫자 하나로 압축했습니다. 바로 ‘기여도 35%’인데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재산분할 소송은 단순한 재벌가의 이혼 스캔들을 넘어, 한국 가족법 역사상 전례 없는 규모의 판결로 기록됐습니다. 1조 원이 훌쩍 넘는 재산분할 금액보다 사람들이 더 궁금해하는 건 사실 이 하나의 질문입니다. “도대체 35%는 어떻게 나온 숫자인가?” 오늘은 그 계산 과정과 배경을 차근차근 살펴보겠습니다.

사건의 배경 — 결혼에서 소송까지, 35년의 타임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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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결혼은 19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요. 최태원 당시 선경그룹(현 SK그룹) 후계자와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녀 노소영이 혼인하면서, 이 결혼은 재벌가와 정치 권력의 결합이라는 세간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후 SK그룹은 통신·에너지·반도체 등 핵심 산업을 아우르는 국내 2~3위 재벌로 성장했고, 최태원은 명실상부한 그룹의 총수로 자리를 굳혔죠.

균열의 시작은 2019년이었습니다. 최태원 회장이 수년간 다른 여성과 관계를 유지해 온 사실이 공론화되면서 이혼 소송이 공식화됐는데요. 그 이후 1심과 2심의 판결이 천양지차로 갈리며 법조계와 대중 모두를 놀라게 했습니다. 2022년 12월 서울가정법원의 1심 판결은 재산분할 약 665억 원이었습니다. 그런데 2023년 11월 서울고등법원의 항소심 판결은 이 금액을 무려 약 1조 3,808억 원으로 끌어올렸습니다. 1심 대비 20배가 넘는 수치였죠.

이 극적인 반전의 핵심은 단 하나, ‘어떤 재산을 분할 대상으로 볼 것인가’의 문제였습니다. 2심 법원은 최태원 회장 보유 SK 계열사 지분의 가치 상승분을 부부 공동 형성 재산으로 판단했고, 그 전체 금액에 노소영의 ‘기여도 35%’를 적용한 결과가 바로 저 천문학적 숫자였습니다.

재산분할의 법적 구조 — ‘특유재산’과 ‘공동재산’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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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여도 계산을 이해하려면 먼저 한국 민법의 재산분할 구조를 알아야 하는데요. 민법 제839조의2는 이혼 시 ‘부부가 협력하여 이룩한 재산’을 기준으로 분할 청구가 가능하다고 규정합니다. 핵심 쟁점은 여기서 나옵니다. 결혼 전부터 보유했거나 결혼 중 상속·증여로 취득한 재산은 ‘특유재산’으로, 원칙적으로 재산분할 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입니다.

최태원 측은 자신의 SK 지분이 상당 부분 결혼 이전에 형성된 특유재산이거나, 기업 경영 능력에 의한 독자적 성과라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노소영 측은 결혼 기간 중 SK그룹이 급격히 성장한 만큼, 그 가치 증가분은 부부 공동의 노력이 녹아든 결과물로 봐야 한다고 맞섰죠. 집을 비유로 들자면, 결혼 전 이미 지어진 건물 자체는 특유재산이지만, 결혼 후 30년간 함께 가꾼 증축 부분과 가치 상승분은 공동 재산에 해당한다는 논리입니다.

2심 법원은 노소영 측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결혼 기간 중 SK 주식 가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부분을 공동 형성 재산으로 인정했고, 이 거대한 파이를 나누는 기준으로 ‘기여도’가 등장하게 됩니다.

‘35%’라는 숫자 — 법원은 무엇을 어떻게 계산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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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분할에서 기여도는 단일한 공식으로 딱 떨어지지 않습니다. 법원은 여러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는데요. 크게 보면 결혼 기간의 장단, 각자의 직접·간접 기여, 경제적 협력의 정도, 미래 생활 보장의 필요성 등이 주요 판단 기준입니다. 특히 전업주부나 배우자의 사업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한 경우, ‘간접 기여’를 어떻게 평가하느냐가 핵심이 됩니다.

노소영의 기여도를 35%로 산정한 배경에는 몇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습니다. 우선 30년 이상의 결혼 기간이 기본값으로 작동했습니다. 기간이 길수록 배우자의 간접 기여가 누적된 것으로 보거든요. 여기에 자녀 양육과 가사 전담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노동’이 더해졌고, 총수의 배우자로서 각종 기업 행사와 사회 활동에 참여하며 SK의 대외적 이미지를 유지하는 데 기여했다는 점도 반영됐습니다.

더 나아가 이 사건에서는 노태우 전 대통령 집권 시기(1988~1993)와 SK그룹의 사업 확장 시기가 겹친다는 점도 재판 과정에서 논의됐습니다. 일각에서는 당시 선경그룹이 이동통신 사업권 획득 등 핵심 사업 기반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배경이 작용했다는 시각도 있었는데요. 법원이 이 부분을 기여도 산정에 명시적으로 어느 정도 반영했는지는 판결문의 세부 내용에 따라 해석이 갈리는 지점입니다. 다만 전체적인 맥락에서 보면, 노소영이라는 존재 자체가 SK 성장의 사회적 자본으로 기능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왜 1심과 2심이 이토록 달랐나 — 판단의 갈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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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과 2심의 결론이 20배 이상 차이 난 이유는 ‘재산의 범위’를 어디까지 볼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1심은 비교적 보수적인 입장에서, 최태원 회장의 SK 지분을 특유재산으로 보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기업인의 사업적 판단과 경영 능력이 재산 증가의 주된 원인이라고 본 거죠.

반면 2심은 훨씬 적극적인 해석을 택했습니다. 결혼 생활 중 배우자가 가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해 줬기에 총수가 경영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는 논리, 즉 ‘간접 기여의 연쇄 효과’를 인정한 것입니다. 마치 무대 위 배우 뒤에서 조명과 무대를 관리하는 스태프가 없었다면 공연 자체가 불가능했다는 이치와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요. 2심은 이 무대 뒤 기여를 35%라는 숫자로 환산했습니다.

이 차이는 단순히 두 재판부의 성향 차이가 아니라, 한국 가족법이 ‘배우자의 기여’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근본적 관점의 충돌을 드러냅니다. 재산을 만든 사람의 능력 vs.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한 사람의 역할 — 이 둘의 무게를 어떻게 달 것인가의 문제인 것이죠.

이 판결이 던지는 질문 — 한국 이혼법의 지각 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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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이 단순한 재벌 이혼 이야기가 아닌 이유는, 그 파급력이 훨씬 넓은 곳까지 미치기 때문입니다. 2심 판결은 사실상 ‘기업 성장의 과실도 부부 공동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선례를 만들어 냈는데요. 앞으로 기업인이나 자산가가 이혼할 때 배우자의 기여도를 어떻게 산정할 것인가에 대한 법원의 기준이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또한 이 판결은 오랫동안 사회적으로 ‘보이지 않던 노동’, 즉 가사와 육아가 경제적으로 얼마나 가치 있는지를 공식적으로 재평가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월급명세서에 찍히지 않는 일들이 실은 수조 원짜리 기업 성장을 떠받친 기반이었다는 인식은, 우리 사회가 노동과 기여를 바라보는 시각을 돌아보게 합니다.

물론 이 판결에 대한 시각은 엇갈립니다. 경영 성과를 배우자와 나눠야 한다면 기업인의 인센티브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있고, 반대로 결혼 제도 안에서 가사 노동자의 법적 지위를 강화하는 긍정적 신호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이 재판은 ‘결혼이란 무엇인가’, ‘함께 이룬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법정 언어로 치열하게 다뤘다는 점에서 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결국 ‘35%’는 단순한 숫자가 아닙니다. 30년이 넘는 결혼 생활, 보이지 않는 기여, 그리고 기업 성장의 공과를 사회가 어떻게 나눌 것인가에 대한 법원의 답변입니다. 대법원의 최종 판단이 어떤 방향을 택하든, 이 사건이 한국 가족법 역사에 굵직한 물음표를 남긴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