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여름 아스팔트 위에 서 있다고 상상해보세요. 온도계는 40도를 향해 치닫고, 바람 한 점 없는 하늘에는 새하얀 태양만 떠 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이렇게 말한다면 어떨까요. “저 열기의 진짜 원인은 지구 반대편 북극의 얼음이 녹고 있기 때문입니다.” 황당하게 들리죠. 차가운 곳이 더 차가워져야 한국이 시원해지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놀랍게도, 정반대입니다. 북극이 따뜻해질수록 한반도의 여름은 더 잔인해집니다. 이 이상한 연결고리의 정체, 지금부터 천천히 풀어드리겠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냄비 뚜껑 — 열돔이란 무엇인가

hot city summer heat ha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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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공기를 가두는 거대한 공기 감옥

열돔(Heat Dome)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으면 SF 영화 속 장치처럼 들립니다. 실제로 그 원리는 꽤 영화적입니다. 강한 고기압 시스템이 특정 지역 상공에 자리를 잡으면, 마치 투명한 뚜껑이 씌워지듯 대기 상층부가 막혀버립니다. 보통 지표면의 뜨거운 공기는 위로 올라가면서 자연스럽게 냉각되고 구름을 만들어 비를 내립니다. 그런데 고기압이 버티고 있으면 그 상승 기류 자체가 눌려버립니다. 올라가려는 공기가 위에서 내려누르는 힘에 막혀 지표 근처에 갇혀버리는 것이죠. 냄비에 뚜껑을 덮으면 안의 열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고 더 뜨거워지는 것과 똑같은 원리입니다.

게다가 고기압 내부에서는 공기가 위에서 아래로 하강합니다. 이 하강 기류는 압축되면서 온도가 더 올라갑니다. 이미 뜨거운 공기가 압축되면서 더 달궈지고, 그 열기가 지표면을 태우는 구조입니다. 비구름이 생길 틈도 없으니 햇볕은 고스란히 땅을 두드립니다. 도시의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는 낮 동안 흡수한 열을 밤에도 내뿜으며, 한반도 전체가 거대한 찜통 안에 들어간 것처럼 됩니다.

왜 한반도는 유독 취약할까

지구에는 수많은 지역이 있는데, 왜 유독 한반도에서 열돔 피해가 두드러질까요. 한반도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고 대륙과 해양이 만나는 경계에 있습니다. 여름이면 북태평양 고기압이 세력을 키우며 한반도 쪽으로 팽창합니다. 이 고기압이 한반도 위에 딱 눌러앉으면, 수증기를 잔뜩 머금은 뜨겁고 습한 공기가 빠져나가지 못한 채 축적됩니다. 습한 열기는 건조한 열기보다 체감 온도를 훨씬 높이기 때문에, 기온계 숫자 이상으로 더위를 느끼게 됩니다. 여기에 도시화로 인한 열섬 효과까지 더해지면, 서울 같은 대도시는 주변 농촌보다 몇 도씩 더 뜨거운 별개의 행성이 되어버립니다.

북극과 한국 — 이 둘이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arctic melting polar 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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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이 따뜻해지면 대기의 고속도로가 흔들린다

지구 대기권 상층부, 지상에서 약 7~12킬로미터 높이에는 거대한 바람의 강이 흐릅니다. ‘제트기류(Jet Stream)’라고 불리는 이 바람은 시속 수백 킬로미터로 지구를 서쪽에서 동쪽으로 돌며 북쪽의 차가운 공기와 남쪽의 따뜻한 공기를 가르는 경계선 역할을 합니다. 이 경계가 강하게 유지될 때는 냉기와 열기가 각자의 자리를 지킵니다. 한국의 여름이 덥긴 해도 어느 정도 예측 가능했던 것은, 이 제트기류라는 ‘공기의 담장’이 제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북극이 따뜻해지면 이 담장이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제트기류의 힘은 북극의 차가운 공기와 중위도의 따뜻한 공기 사이의 ‘온도 차’에서 나옵니다. 온도 차이가 클수록 바람은 강하고 직선으로 흐릅니다. 반대로 온도 차이가 줄어들면 바람이 약해지고, 약해진 바람은 직선 대신 커다란 S자 곡선을 그리며 사행(蛇行)하기 시작합니다. 마치 팽팽하게 당겨진 고무줄이 느슨해지면 구불구불 늘어지는 것처럼 말이죠.

구불거리는 제트기류가 열기를 가둔다

제트기류가 크게 구불거리면 무슨 일이 생길까요. 북쪽으로 굽어 올라간 구간에서는 뜨거운 공기가 북쪽 깊숙이 밀려들어가고, 남쪽으로 굽어 내려간 구간에서는 차가운 공기가 중위도 지역까지 쏟아져 내려옵니다. 겨울에 한국이 갑자기 시베리아 같은 강추위에 휩싸이는 것도 이 현상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구불거림이 심해질수록 이 패턴이 한 자리에 오래 머문다는 점입니다. 마치 강물이 구불구불 흐를수록 속도가 느려지듯, 사행하는 제트기류는 제자리에서 느릿느릿 움직입니다.

한반도 상공에 뜨거운 공기를 가두는 고기압 덩어리가 자리를 잡았을 때, 예전이라면 활발한 제트기류가 며칠 만에 그것을 밀어내 줬을 겁니다. 하지만 느슨해진 제트기류는 그 덩어리를 밀어낼 힘이 없습니다. 열돔은 일주일, 이주일, 심하면 한 달 가까이 한반도 위에 눌러앉아 버립니다. 단순히 더운 게 아니라 더위가 ‘지속’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인체와 도시 인프라가 버티기 어려운 건 바로 이 집요한 지속성 때문입니다.

차가운 곳이 녹을수록 더운 곳은 더 뜨거워진다 — 역설의 과학

jet stream atmosphere flow
Photo by Chandler Cruttenden on Unsplash

북극 증폭이라는 가속 페달

북극은 지구 평균보다 두세 배 빠른 속도로 따뜻해지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이를 ‘북극 증폭(Arctic Amplification)’이라고 부릅니다. 흰 눈과 얼음은 태양빛을 반사하는 거울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얼음이 녹아 어두운 바다가 드러나면, 태양빛을 반사하는 대신 흡수해버립니다. 더 많이 흡수한 열이 다시 얼음을 녹이고, 더 많은 바다가 드러나고, 또 더 많은 열을 흡수하는 악순환이 생깁니다. 스스로 가속되는 이 구조 때문에 북극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달궈지고 있습니다.

북극이 빠르게 따뜻해질수록 제트기류의 동력원인 온도 차이가 더 빠르게 줄어듭니다. 그 결과 제트기류의 사행은 점점 더 크고 느려지며, 한반도 위에 열돔이 자리 잡는 빈도와 기간이 모두 늘어납니다. 먼 나라 북극의 변화가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한반도의 체감 온도를 직접적으로 끌어올리는 셈입니다. 지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촘촘하게 연결된 하나의 시스템입니다.

숫자로 확인되는 냉혹한 현실

이것이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는 증거는 우리 일상 속에 이미 쌓여 있습니다. 한반도의 폭염 일수와 열대야 일수는 수십 년 전에 비해 눈에 띄게 늘어났습니다. 과거에는 장마가 끝난 뒤 더위가 한 달 남짓 이어지다 가을 바람이 찾아오는 패턴이 비교적 규칙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장마 자체가 불규칙해지고, 더위의 절정이 8월을 훌쩍 넘겨 9월까지 이어지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열돔이 더 자주, 더 오래 한반도를 덮는다는 뜻입니다. 기상청의 온도 기록을 들여다보면 역대 최고 기온 기록이 갈수록 최근 연도에 집중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특히 야간 최저 기온이 25도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 열대야는 도시 주민의 건강에 직접적인 위협이 됩니다. 잠을 자는 동안에도 몸이 회복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열대야가 일주일 이상 지속되면 노인이나 영유아, 만성 질환자에게는 생명을 위협하는 수준이 됩니다. 이 열대야의 빈도 역시 북극 온난화와 제트기류 약화가 빚어낸 열돔 장기화와 궤를 같이하며 증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맞이할 여름 — 열돔의 미래

future climate extreme weather
Photo by Javier Miranda on Unsplash

더워지는 것이 아니라 ‘굳어지는’ 더위

앞으로의 문제는 단순히 기온이 1도, 2도 올라가는 것이 아닙니다. 더위가 패턴 없이 고착화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기후 과학자들이 경고하는 시나리오에서 한반도의 열돔은 빈도와 강도 모두 악화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기록적인 폭염’이라고 부르는 날씨가 10년, 20년 후에는 평범한 여름이 될 수 있습니다. 미래 세대가 ‘그때는 정말 시원했겠다’며 지금의 여름 사진을 보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연결된 지구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북극의 얼음과 한반도의 폭염이 이어져 있다는 사실은, 뒤집어 말하면 지구 어느 곳에서의 탄소 감축도 결코 무의미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제트기류를 약화시키는 온도 차 감소를 막으려면 북극의 온난화를 늦춰야 하고, 북극의 온난화를 늦추려면 전 지구적인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야 합니다. 한국이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고, 유럽이 탄소세를 도입하고, 아시아 개발도상국이 석탄 발전소를 줄이는 모든 행동이 결국 한반도의 열돔을 약화시키는 힘으로 이어집니다.

동시에 도시 차원에서의 대응도 필요합니다. 도심 녹지를 늘려 도시 열섬 효과를 줄이고, 건물 외벽을 태양빛을 반사하는 소재로 바꾸고, 폭염 취약 계층에 대한 사회 안전망을 두텁게 하는 것들이 열돔의 피해를 줄이는 현실적인 방법입니다. 우리가 손 쓸 수 없는 먼 곳의 이야기처럼 보였던 북극 온난화는, 사실 우리 동네 골목 안까지 영향을 미치는 아주 가까운 이야기였습니다.

북극과 한반도. 거리로는 수천 킬로미터, 온도로는 수십 도가 차이 납니다. 그러나 대기라는 하나의 시스템 안에서 이 둘은 떼려야 뗄 수 없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차가운 극지방의 얼음 한 조각이 녹는 순간, 그 파장은 대기의 강줄기를 타고 한반도의 여름 한복판까지 도달합니다. 지구가 하나라는 말은 환경 구호만이 아니라, 물리학적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가장 먼저 체감하는 것은 다름 아닌 우리의 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