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인터넷 어딘가의 익명 사용자가 한 장의 사진을 올렸습니다. 형광등이 윙윙거리는 텅 빈 공간, 축축해 보이는 노란 카펫, 끝없이 이어지는 벽. 설명은 단 한 줄이었습니다. “현실에서 noclip이 되면 여기로 떨어진다.” 사진을 누가 찍었는지, 어디서 가져왔는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올린 사람의 이름조차 없었죠. 그리고 아무도 그것이 5년 후 A24의 영화가 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A24가 ‘백룸(The Backrooms)’을 영화로 만들겠다는 소식이 퍼졌을 때,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했습니다. Hereditary, Midsommar로 현대 공포 영화의 문법을 다시 쓴 스튜디오가, 4chan 게시판에서 탄생한 인터넷 괴담을 선택했다는 게 선뜻 납득이 가지 않았던 겁니다. 그런데 이 둘의 만남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단순한 IP 거래 이상의 무언가가 숨어 있습니다. 저작권법이 따라잡지 못한 창작의 진화, 그리고 집단 상상력이 거대 스튜디오와 충돌하는 지점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노란 복도의 탄생 — 아무도 만들지 않았지만 모두가 만든 공간
백룸이 처음 세상에 등장한 방식은 기존의 어떤 IP와도 달랐습니다. 소설도, 게임도, 영화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한 장의 사진과 한 줄의 문장이 인터넷에 던져졌고, 그것을 발견한 수천 명의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살을 붙이기 시작했습니다. “레벨 0″이라는 이름이 붙었고, 공간에 사는 괴물의 종류와 생태가 설계됐으며, 현실에서 이 공간으로 이동하는 방법까지 체계화됐습니다. 위키, 레딧, 유튜브를 타고 퍼지면서 백룸은 방대한 가상 세계관으로 성장했습니다. 누구의 지시도, 원작자의 허가도 없이.
원본 이미지의 출처도 흥미롭습니다. 많은 인터넷 수사관(?)들의 추적 결과, 그 사진은 어떤 평범한 상업 공간의 부동산 매물 사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즉, 처음 이미지를 촬영한 사람은 백룸과 아무 관계없는 부동산 중개업자나 임차인이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공포의 씨앗을 심은 사람조차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 모르고 있을지 모릅니다.
이것이 백룸이 가진 가장 근본적인 특성입니다. 그리스 신화나 도시 전설처럼, 백룸은 ‘누군가’가 창조한 것이 아니라 집단적 상상력이 오랜 시간 증류된 결과물에 가깝습니다. 전통적인 지식재산(IP)의 개념으로는 도저히 규정할 수 없는 존재죠. 원작자? 없습니다. 세계관 디자이너? 수천 명입니다. 저작권자? 불분명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 불분명함이 A24에게는 기회가 됩니다.
10대 유튜버가 할리우드의 문을 두드리다 — 케인 파슨스의 등장
2022년, ‘Kane Pixels’라는 유튜브 채널에 짧은 영상 하나가 올라왔습니다. 누군가 백룸에 갇혀 탈출을 시도하는 발견된 영상(Found Footage) 형식의 단편이었는데, 수준 높은 CG와 촘촘한 세계관 구축으로 단숨에 수천만 뷰를 돌파하며 인터넷을 강타했습니다. 더 놀라운 건 이 영상을 만든 케인 파슨스가 당시 겨우 16~17세의 학생이었다는 사실입니다. 흔한 팬 영상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케인 파슨스는 기존 백룸 커뮤니티의 세계관을 기반으로 삼되, 완전히 새로운 내러티브 층위를 쌓아올렸습니다. 1980년대 배경의 비밀 실험, 정부 기관의 개입, 생존자들의 기록 영상 등 SF 스릴러적 요소를 공포와 결합하면서, 단순한 인터넷 밈을 진정한 시네마틱 유니버스로 끌어올렸습니다. 그의 시리즈를 본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말합니다. “이건 그냥 팬 영상이 아니야.” 바로 그 지점에서 A24가 움직였습니다.
A24는 케인 파슨스에게 연락해 장편 영화 감독직을 제안했습니다. 정식 영화 제작 경험이 전무한 10대 유튜버에게. 이것은 단순한 신인 감독 발탁이 아니었습니다. A24는 사실상 “백룸이라는 집단 IP에서 가장 많은 예술적 부가가치를 창출한 창작자”를 공식 파트너로 삼은 것입니다. 저작권이라는 복잡한 지뢰밭을, 법적 싸움이 아닌 창작적 정당성으로 돌파하는 방법을 선택한 셈이죠.
A24가 ‘백룸’을 선택한 진짜 이유
A24는 단순히 유행하는 콘텐츠를 쫓는 스튜디오가 아닙니다. The Witch, Hereditary, Midsommar의 공통점을 떠올려 보세요. 마녀 재판의 집단 히스테리, 가족을 잠식하는 슬픔(grief), 광기로 물든 여름 축제. A24의 공포는 단순한 점프 스케어가 아니라 특정 시대가 품은 불안의 결정체입니다. 그렇다면 백룸이 담고 있는 시대적 공포는 무엇일까요?
놀랍게도, 그것은 현대인의 실존적 공허함입니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 공간, 끝없이 이어지는 복도, 형광등 아래의 완전한 고립. 코로나19 팬데믹을 전후로 전 세계인이 경험한 그 감각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재택근무로 유령처럼 텅 빈 오피스, 락다운으로 정지된 쇼핑몰, 화면 앞에 혼자 앉아 있던 수백만 명의 일상. 백룸은 그 모두가 느꼈지만 언어화하지 못했던 공포에 이름을 붙여준 셈입니다. A24는 그 감각적 공명을 놓치지 않은 것입니다.
전략적 셈법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백룸은 이미 별도의 광고 없이 전 세계 수억 명이 알고 있는 일종의 ‘브랜드’입니다. 유명 소설가도, 기존 팬덤이 있는 게임 IP도 없이, 인터넷이라는 거대한 집단지성이 공짜로 키워놓은 자산이죠. 특정 원작자에게 거액의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되면서, 강력한 바이럴 마케팅 기반은 이미 갖춰진 상태입니다. 스튜디오 입장에서는 매우 효율적인 선택입니다.
아무도 소유하지 않은 것을 소유한다는 것 — 밈 저작권의 역설
여기서 가장 흥미로운 질문이 등장합니다. A24는 도대체 누구에게서 ‘백룸’을 샀을까요? 엄밀히 말하면, A24가 확보한 권리는 케인 파슨스의 창작물, 즉 그의 유튜브 시리즈와 그가 구체적으로 구현한 세계관에 대한 것입니다. 원본 4chan 사진이나 수천 명이 함께 만든 커뮤니티 설정 자체는 여전히 누구의 것도 아닙니다. 저작권법은 기본적으로 ‘아이디어’가 아닌 ‘표현’을 보호하기 때문입니다. “노란 복도로 클리핑된다”는 아이디어는 보호받지 못하지만, 케인 파슨스가 그것을 담아낸 구체적인 영상과 스토리라인은 보호받습니다.
이것이 밈 경제의 가장 기묘한 역설입니다. 수천 명이 함께 만들어낸 세계관의 ‘가치’는 집단적이지만, 그 위에 가장 매력적인 ‘표현물’을 올린 단 한 명이 그 가치를 현금화할 권리를 갖게 됩니다. 백룸 위키에 밤새 설정을 기여했던 수백 명의 무명 창작자들은 A24 영화의 크레딧에 이름 한 줄 오르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것은 공정한 걸까요? 법적으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도덕적으로는 훨씬 복잡한 문제입니다.
비슷한 사례가 이미 있습니다. Slender Man은 포토샵 합성 이미지 하나에서 시작해 수천 명의 팬이 괴담으로 키워낸 인물이지만, 원본 이미지 제작자가 저작권을 주장하면서 다양한 법적 분쟁이 생겨났습니다. Five Nights at Freddy’s도 팬들의 집단 이론 구축이 IP 가치를 폭발적으로 키웠지만, 저작권은 오직 개발자 한 명에게 귀속됩니다. 인터넷이 만들어낸 공동 창작물을 개인이 소유하는 이 구조는, 앞으로 더 자주, 더 복잡한 형태로 반복될 것입니다.
밈을 영화로 만드는 시대, 할리우드가 배운 새로운 문법
전통적으로 할리우드가 IP를 확보하는 경로는 단순했습니다. 베스트셀러 소설이 나오면, 영화화 권리를 사고, 각본가를 고용해 제작하는 식이었죠. 하지만 인터넷 시대의 IP는 훨씬 복잡하고, 훨씬 빠르게 움직입니다. 오늘 탄생한 밈이 내일 수억 명의 공유 경험이 될 수 있는 세상에서, 스튜디오들은 새로운 사냥법을 익혀야 했습니다. 그리고 A24는 그 새로운 문법 중 가장 영리한 버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단순히 ‘유행하는 것’을 사는 게 아니라, 그것을 가장 탁월하게 재해석한 ‘창작자’를 발굴하는 것. 이것이 핵심입니다. 케인 파슨스는 백룸이라는 원석을 진정한 영화 언어로 가공한 작가입니다. A24는 IP와 감독을 동시에 확보함으로써, 커뮤니티의 지지와 예술적 신뢰성,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앞으로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나아갈 방향을 선명하게 가리키는 나침반이기도 합니다.
팬픽을 쓰던 작가가 공식 소설가가 되고, 코스프레어가 의상 디자이너가 되고, 팬 영상 제작자가 장편 영화 감독이 되는 시대. 집단 창작이 낳은 IP의 가치를 나누는 방식이 천천히, 하지만 분명하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전히 공동 창작자들이 소외되는 구조적 문제는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A24와 케인 파슨스의 사례는 “인터넷이 키워낸 콘텐츠는, 인터넷이 가장 사랑한 창작자의 손으로 영화가 돼야 한다”는 하나의 선례를 남깁니다.
노란 복도의 사진 한 장이, 수천 명의 상상력을 거쳐, 한 10대 유튜버의 손에서 영화적 언어로 다시 태어나고, A24라는 스튜디오가 그것을 스크린 위로 가져오는 이 기묘한 여정. 그 안에는 저작권법이 아직 따라잡지 못한 창작의 진화가 담겨 있습니다. 백룸 영화가 개봉했을 때, 우리는 이것이 A24의 영화인지, 케인 파슨스의 영화인지, 아니면 인터넷이 함께 만든 영화인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쩌면 그 모든 대답이 동시에 맞는, 그런 시대에 우리는 이미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