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히어로 영화 역사에서 가장 기묘한 불균형 중 하나를 떠올려봅시다. 마블에는 베놈이 있습니다. 검은 슬라임 덩어리가 인간에게 들러붙어 괴물로 탈바꿈시키는 이 캐릭터는 2018년 단독 영화가 개봉된 이후 시리즈까지 이어지며 전 세계에서 천문학적인 흥행 수익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DC에는 클레이페이스가 있습니다. 진흙처럼 형체를 자유자재로 바꾸는 이 비극적인 악당은 배트맨의 가장 상징적인 숙적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단 한 편의 단독 영화도 갖지 못했습니다. 이 두 캐릭터 사이에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그리고 놀랍게도, 그 이유는 생각보다 훨씬 흥미롭습니다.
진흙과 슬라임, 어쩐지 닮은 두 괴물
클레이페이스와 베놈을 나란히 놓으면 신기하게도 겹치는 부분이 아주 많습니다. 우선 둘 다 ‘형체 변환’을 핵심 능력으로 가집니다. 베놈은 검은 심비오트가 인간의 몸에 달라붙어 촉수와 송곳니를 만들어내고, 클레이페이스는 말 그대로 몸 전체가 진흙이 되어 누구의 얼굴이든, 어떤 물체든 흉내 낼 수 있습니다. 둘 다 형체가 없다는 것 자체가 공포의 본질이 됩니다. 고정된 모습이 없는 존재만큼 무서운 것이 또 있을까요?
그런데 더 흥미로운 공통점은 비극적인 기원에 있습니다. 베놈의 에디 브록은 허위 보도로 커리어를 송두리째 잃어버린 저널리스트였습니다. 자신의 정체성, 즉 ‘기자’라는 직업적 자아가 무너지는 순간 심비오트를 받아들였죠. 그리고 배트맨 애니메이티드 시리즈에서 그려진 클레이페이스, 맷 헤이건의 이야기는 더욱 처절합니다. 얼굴이 생명이었던 배우가 부패한 기업가의 실험적 약물에 의존하다 결국 형체도 없는 진흙 덩어리로 변해버렸습니다. 배우로서의 얼굴을,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모두 잃어버린 것입니다. 두 캐릭터 모두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서 출발하는 비극입니다.
공포의 본질: 내가 사라지는 것
여기서 잠깐, 두 캐릭터가 공유하는 더 깊은 층위를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베놈과 클레이페이스가 무서운 이유는 단순히 외모가 끔찍해서가 아닙니다. 이들이 진짜 공포스러운 이유는, 원래 평범한 인간이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몸이 변형되고, 얼굴이 사라지고, 자신이 누구였는지조차 잊어가는 존재. 이 두 캐릭터는 슈퍼빌런의 외피를 쓴 실존적 공포입니다. 그렇기에 단순한 악당이 아니라 관객이 감정이입할 수 있는 복잡한 내면을 가진 캐릭터로 수십 년간 사랑받아온 것입니다.
베놈은 어떻게 단독 영화를 갖게 됐나
베놈이 2018년 단독 영화를 갖게 된 배경에는 사실 창의적 열정보다는 기업의 절박함이 있었습니다. 이야기는 소니 픽처스의 딜레마에서 시작됩니다. 소니는 스파이더맨 캐릭터의 영화 판권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마블 스튜디오와의 협약으로 스파이더맨을 MCU에 ‘빌려준’ 상황이었습니다. 문제는 소니가 스파이더맨 없이도 자체적인 슈퍼히어로 세계관을 구축하고 싶었다는 점입니다. 말하자면, 주인공은 없는데 주인공 주변 인물들만으로 시리즈를 만들어야 했던 기막힌 상황이었죠.
이 아이러니한 제약이 오히려 결정적인 추진력이 됐습니다. 소니는 베놈에 모든 것을 걸었고, 평론가들의 혹독한 평점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에서 약 8억 5천만 달러라는 놀라운 흥행 수익을 기록했습니다. 관객들은 악당이 주인공인 영화라는 콘셉트를 기꺼이 받아들였습니다. 이후 속편까지 이어지며 베놈은 소니 유니버스의 핵심 프랜차이즈로 자리 잡았죠. 역설적이게도, 소니가 스파이더맨을 마음대로 쓸 수 없었기 때문에 베놈이 스타가 될 수 있었습니다.
절박함이 만들어낸 성공
이것은 단순한 흥행 이야기가 아닙니다. 제약이 오히려 창의성을 낳는다는 오래된 법칙의 현대적 사례입니다. 소니는 선택지가 없었기에 베놈이라는 단 하나의 캐릭터에 마케팅과 예산, 배우 캐스팅까지 모든 역량을 집중했습니다. 톰 하디라는 검증된 배우를 앞세워 캐릭터에 두께를 더했고, 그 결과물이 완벽하지 않았더라도 적어도 이 캐릭터가 스크린에서 빛날 수 있는 무대가 만들어졌습니다. 절박함이 기회를 만든 셈입니다.
클레이페이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나
반면 클레이페이스의 사정은 정반대였습니다. DC와 워너브라더스는 배트맨이라는 황금 IP를 직접 보유하고 있었고, 배트맨이 있으면 조커도, 캣우먼도, 투페이스도, 클레이페이스도 언제든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 ‘풍족함’이 문제였습니다. 선택지가 너무 많을 때 사람들은, 그리고 기업들은 가장 안전하고 익숙한 선택을 합니다. 클레이페이스는 언제나 ‘나중에’의 영역에 머물렀습니다.
실제로 클레이페이스가 배트맨 관련 영화에 모습을 드러낼 기회가 완전히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1995년 배트맨 포에버의 초기 각본에 클레이페이스가 포함됐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그러나 최종 편집 단계에서 결국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후 DC 확장 유니버스가 맨 오브 스틸을 시작으로 본격 가동됐을 때도 클레이페이스는 후보 명단에 오르지 못했습니다. DC는 저스티스 리그 결성에 급급했고, 개별 악당의 서사를 차곡차곡 쌓아갈 여유가 없었습니다. 배트맨 역할을 맡은 배우가 교체되는 혼란 속에서, 클레이페이스는 그저 잊혀진 이름으로 남았습니다.
너무 많은 클레이페이스 문제
클레이페이스의 영화화가 어려운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사실 ‘클레이페이스’는 하나의 캐릭터가 아닙니다. DC 코믹스에는 바실 칼로, 맷 헤이건, 프레스턴 페인 등 여러 명의 클레이페이스가 존재합니다. 원조 클레이페이스인 바실 칼로는 공포영화 배우였고, 두 번째 클레이페이스 맷 헤이건은 해저 탐험가였으며, 세 번째 프레스턴 페인은 과학자였습니다. 누구를 주인공으로 삼을 것인지부터가 난관이었습니다. 베놈은 에디 브록이라는 단일한 정체성으로 수십 년간 독자들에게 각인돼 있었지만, 클레이페이스는 정체성 자체가 분산돼 있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형체를 바꾸는 능력을 가진 캐릭터가 정작 자신만의 고정된 이미지를 갖지 못한 것입니다.
아이러니 — 클레이페이스가 사실 더 유리한 캐릭터였다
여기서 진짜 반전이 등장합니다. 여러 조건을 따져보면 클레이페이스는 사실 베놈보다 단독 영화에 훨씬 더 적합한 캐릭터일 수 있습니다. 특히 배트맨 애니메이티드 시리즈에서 그려진 클레이페이스의 이야기는 지금 봐도 손색없는 완성도 높은 비극적 서사를 갖추고 있습니다. 배우로서의 전성기를 누리다 탐욕스러운 기업가에 의해 실험 대상이 되어 인간성을 잃어가는 이야기는 단순한 슈퍼빌런 기원담을 넘어, 현대 사회의 욕망과 착취를 다루는 우화에 가깝습니다. 성우 론 펄먼의 묵직한 목소리로 살아 숨쉬었던 그 클레이페이스는 지금도 많은 팬들의 기억 속에 가장 슬픈 배트맨 악당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시각적 스펙터클 면에서도 클레이페이스는 오히려 더 큰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베놈의 심비오트 표현도 인상적이지만, 클레이페이스는 액체와 고체의 경계를 넘나드는 형태 변환을 구현할 수 있습니다. 진흙이 흘러내리고 굳어지며 다양한 얼굴과 형태를 만들어내는 비주얼은, 현재의 영화 특수효과 기술로 구현된다면 관객에게 완전히 새로운 공포 경험을 선사할 수 있습니다. 이 점에서 클레이페이스는 아직 진정한 잠재력을 단 한 번도 발휘해본 적 없는 캐릭터입니다.
배트맨이 클레이페이스의 발목을 잡았다
역설적이게도, 배트맨이라는 거대한 존재 자체가 클레이페이스를 가려왔을지 모릅니다. 배트맨의 악당 갤러리는 슈퍼히어로 코믹스 역사상 가장 풍부한 컬렉션 중 하나입니다. 조커, 투페이스, 리들러, 캣우먼, 포이즌 아이비… 빌런들이 너무 많다 보니 클레이페이스는 늘 두 번째, 세 번째 줄에 서 있어야 했습니다. 베놈에게는 소니라는 절박한 보호자가 있었지만, 클레이페이스에게는 그 역할을 해줄 존재가 없었습니다. 배트맨 세계관 안에서 클레이페이스는 언제나 ‘배트맨의 빌런 중 하나’였을 뿐,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진 주인공으로 조명받을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이제, 클레이페이스의 시간이 올까
흥미롭게도, 최근 상황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제임스 건과 피터 사프란이 DC 스튜디오의 새 수장이 되면서 완전히 새로운 DC 유니버스 구축을 선언했습니다. 이 새로운 세계관에서 클레이페이스가 주목받는 캐릭터 중 하나로 거론된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습니다. 제임스 건은 개별 캐릭터들의 서사를 충분히 쌓아가는 방식을 택하고 있으며, 베놈이 이미 증명했듯 관객들은 악당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이야기도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습니다.
결국 클레이페이스와 베놈의 이야기는 단순히 두 캐릭터를 비교하는 데서 그치지 않습니다. 이것은 할리우드 스튜디오가 IP를 어떻게 다루느냐의 문제이고, 절박함이 창의성을 낳는다는 역설의 이야기이며, 가장 좋은 이야기가 반드시 먼저 스크린에 오르는 것은 아니라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냉혹한 현실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클레이페이스가 자신의 이야기를 드디어 펼치는 날을 머지않아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날, 많은 관객들은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 “이걸 왜 이제야 만들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