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서울 한복판, 꽃으로 둘러싸인 소녀상 앞에서 카메라를 향해 웃으며 도발적인 몸짓을 해 보입니다. 채팅창에는 숫자가 치솟고, 후원 알림음이 연거푸 울립니다. 이것이 콘텐츠입니다. 적어도, 이 남자에게는요. ‘조니 소말리’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미국 스트리머 램지 칼리드 이스마엘(Ramsey Khalid Ismael)이 한국 사회에 남긴 파문은, 단순한 외국인 관광객의 일탈로 치부하기엔 너무나 정교하게 설계된 사건이었는데요. 오늘은 이 현상의 배경과 구조를 찬찬히 살펴보겠습니다.

소녀상 앞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comfort women statue Seoul protest
Photo by Hakan Nural on Unsplash

2023년 하반기, 조니 소말리는 한국을 방문해 각종 도발적 행위를 라이브로 송출했습니다. 그중 가장 큰 공분을 산 장면 중 하나가 바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의 행동이었는데요. 그는 역사적 아픔이 담긴 동상 앞에서 조롱하는 제스처를 취하고, 피해자들을 비하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으며 이를 고스란히 전 세계 시청자에게 생중계했습니다. 소녀상은 단순한 조각품이 아닙니다. 국가적 트라우마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역사 문제가 응축된 상징물이에요. 그 앞에서의 모욕 행위는 많은 한국인에게 개인적 모욕을 넘어 집단적 상처를 건드리는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사건이 아니었다는 점도 짚어야 합니다. 그는 한국 체류 기간 동안 지하철에서 고성을 지르고, 드라마 촬영 현장에 난입하며, 일반 시민들에게 무례한 언행을 반복했습니다. 일본 방문 당시에는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들을 조롱하는 발언으로 현지 경찰에 체포되기도 했죠. 한국에서도 결국 업무방해, 모욕죄 등의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그러나 그가 구치소에서 나오는 순간에도, 채팅창의 시청자들은 환호했습니다.

이쯤에서 우리가 물어야 할 질문은 “이 사람이 왜 이런 짓을 했냐”가 아닙니다. 더 본질적인 질문은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이 왜 돈이 되는가?”

‘헤이트 스트리밍’이란 무엇인가 — 분노가 수익이 되는 구조

hate streamer rage bait content
Photo by Kaptured by Kasia on Unsplash

‘헤이트 스트리머(hate streamer)’는 말 그대로 혐오와 도발을 콘텐츠의 핵심 동력으로 삼는 라이브 방송인을 일컫는 말인데요. 이들이 활용하는 플랫폼은 주로 트위치(Twitch)나 킥(Kick)과 같은 실시간 스트리밍 서비스입니다. 트위치는 2011년 게임 방송 플랫폼으로 출발해 아마존에 인수된 이후 전 세계 수억 명이 이용하는 거대 미디어 생태계로 성장했어요. 문제는 이 플랫폼이 ‘실시간’이라는 특성 덕분에 도발과 반응이 즉각적으로 맞물리는 구조를 만들어냈다는 점입니다.

헤이트 스트리밍의 수익 공식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마치 불구경과 같아요. 사람들은 불이 나면 멈춰서 바라봅니다. 혐오 콘텐츠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사람이 또 무슨 짓을 하나” 하는 심리로 클릭하는 사람, 분노해서 클립을 퍼 나르는 사람, 반응 영상을 만드는 유튜버까지 — 모두가 원본 콘텐츠의 조회수와 화제성에 기여합니다. 스트리머는 이 과정에서 후원금(도네이션), 구독료, 광고 수익, 더 나아가 클립이 퍼지면서 얻는 브랜드 인지도까지 손에 넣습니다. 사람들의 분노가 곧 연료가 되는 셈이에요.

특히 이들이 선호하는 콘텐츠 포맷은 ‘IRL(In Real Life) 스트리밍’입니다. 게임 화면 대신 현실 세계를 배경으로 삼아, 실제 공간과 실제 사람들을 카메라 앞에 세우는 방식이죠. 이때 현지인의 당황하거나 분노한 반응이 바로 콘텐츠의 ‘재미 요소’가 됩니다. 결국 피해자의 감정이 곧 오락 상품이 되는 구조인데요. 이 점에서 헤이트 스트리밍은 단순한 악취미가 아닌, 정교하게 설계된 착취 모델에 가깝습니다.

왜 하필 한국인가 — 먹잇감이 된 이유

Korea tourist target controversy
Photo by Luke Ow on Unsplash

조니 소말리와 그 뒤를 이어 한국을 찾은 유사한 성격의 외국 스트리머들은 왜 한국을 선택했을까요? 여기에는 몇 가지 구조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한국의 높은 ‘반응 가능성’입니다. K-팝, K-드라마, 온라인 커뮤니티 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한국 관련 콘텐츠는 글로벌 시청자의 관심을 끌기 쉬운 소재가 됐습니다. 여기에 한국 누리꾼들이 보여주는 강렬하고 조직적인 반응은 스트리머 입장에서 ‘보장된 화제성’을 의미합니다. 분노한 한국 트위터가 클립을 전파하면, 그것이 곧 광고가 되는 셈이에요.

두 번째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한국의 ‘안전성’입니다. 위험이 없는 나라에서 안전하게 최대한의 도발을 시도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어요. 치안이 좋고, 외국인 관광객에게 비교적 관대한 문화, 그리고 법적 처벌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 이들에게는 활동하기 좋은 조건으로 읽힌 것입니다. 마치 큰 파장을 일으킬 수 있는 돌멩이를 찾아다니다가, 잔잔하고 아름다운 호수를 발견한 것처럼요. 파문이 클수록 콘텐츠도 강렬해집니다.

세 번째는 소녀상이라는 소재 자체의 ‘민감도’입니다. 헤이트 스트리머들은 항상 최대한의 감정적 반응을 끌어낼 수 있는 대상을 노립니다. 역사적 상처가 깊고, 아직 해결되지 않은 외교 문제와도 연결된 소녀상은 그 민감도 면에서 이들의 ‘타깃 조건’을 정확히 충족시켰습니다. 이는 단순한 무지에서 비롯된 실수가 아니라, 충분히 계산된 선택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플랫폼은 왜 손을 놓고 있었나

Twitch streaming platform moderation
Photo by Hakim Menikh on Unsplash

이 모든 사태를 가능하게 만든 공범이 있다면, 그것은 플랫폼입니다. 트위치를 비롯한 주요 스트리밍 플랫폼들은 오랫동안 ‘콘텐츠 중립’ 원칙을 방패막이로 사용해왔는데요. 실시간 방송의 특성상 모든 내용을 사전 검열하기 어렵다는 논리가 그 뒤를 받쳐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점점 설득력을 잃고 있는 주장입니다. 이미 AI 기반 콘텐츠 감지 기술이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해 있고, 대규모 조직인 플랫폼이 특정 스트리머의 반복적인 규정 위반을 ‘몰랐을 리 없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플랫폼의 수익 구조입니다. 헤이트 스트리머가 많은 시청자를 끌어모을수록, 플랫폼도 그만큼 더 많은 광고 수익과 구독료를 나눠 갖습니다. 즉, 플랫폼도 이 구조의 수혜자 중 하나인 셈이에요. 논란이 된 콘텐츠가 삭제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플랫폼이 얻는 경제적 이익도 커집니다. 이것은 편의에 의한 방치인지, 의도적인 묵인인지의 경계가 매우 흐릿한 문제입니다.

트위치는 혐오 발언과 폭력적 콘텐츠에 대한 정책을 여러 차례 강화해왔고, 실제로 문제가 된 계정을 정지시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속도와 기준이 일관되지 않다는 비판은 끊이지 않습니다. 어떤 스트리머의 방송은 수십만 명이 보는 동안 제재가 없었고, 또 다른 채널은 소수의 신고만으로 즉각 차단됩니다. 이 불균형한 집행 기준이야말로 플랫폼이 해결해야 할 핵심 과제입니다.

한국의 대응, 그리고 우리가 배워야 할 것

Korea legal arrest streamer justice
Photo by Suzi Kim on Unsplash

한국 사회의 반응은 여러 층위에서 동시에 나타났습니다. 온라인에서는 강력한 규탄 여론이 형성됐고, 법적 대응도 이루어졌습니다. 조니 소말리는 결국 국내 법원에서 실형 판결을 받았는데요. 이는 단순한 개인의 처벌을 넘어서, 외국인이라 하더라도 한국 땅에서 법을 어기면 책임을 진다는 메시지를 국제 사회에 분명히 전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습니다. 관련 법 조항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한국의 사법 시스템이 이런 유형의 도발적 방송 행위에 어떻게 대응할 수 있는지 선례를 만들어낸 사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법적 처벌이 유일한 해답은 아닙니다. 처벌은 이미 피해가 발생한 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에요.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플랫폼이 이 같은 콘텐츠를 수익화하지 못하도록 하는 구조적 변화에서 찾아야 합니다. 광고주들이 혐오 콘텐츠 인접 영역에 광고를 게재하지 않도록 압박하는 캠페인, 시청자들의 신고 체계 강화,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콘텐츠에 ‘클릭’하지 않는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함께 이루어져야 합니다. 도발을 무시하는 것이 때로는 가장 강력한 대응이라는 역설도 생각해볼 만하죠.

또한 이 사건은 한국이 국제 미디어 환경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한국 문화가 세계적인 영향력을 갖게 될수록, 이를 이용하려는 세력도 함께 등장합니다. 이것은 성장통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다만,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이 도전에 응전하느냐가 앞으로의 모습을 결정할 것입니다.

마무리 — 분노를 팔지 말고, 이해를 키우자

조니 소말리 사건은 단 한 명의 악질 스트리머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사건은 혐오가 수익화될 수 있는 플랫폼 구조, 약자의 반응을 콘텐츠로 소비하는 시청자 심리, 그리고 국제 미디어 환경에서 문화적 상징물을 보호해야 하는 사회적 과제 모두를 한꺼번에 드러낸 사건입니다. 우리가 분노를 클릭할 때마다, 그 분노는 누군가의 수익이 됩니다. 이것이 이 시대 미디어 소비에서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구조입니다. 소녀상 앞에서 벌어진 모욕은 결코 가볍게 지나칠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사건에 어떻게 반응하고, 무엇을 바꾸어낼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기도 합니다.